성도들은 매 주일마다 강단에 새롭게 장식된 꽃꽂이를 보며 은혜를 받는다. 주일 예배를 드리기 전 기도를 마친 후 꽃꽂이를 보며 분주한 일상 속에서 잊었던 계절을 찾기도 하고, 절기마다 다른 감동으로 다가오는 꽃향기로 소소한 감사를 발견하기도 한다.


밝은소리는 지난주일(3일) 오후 5시, 교회의 강단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꽃꽂이부 봉사자들을 만나 보았다.
꽃꽂이부는 본 교회의 창립 때부터 지금까지 30년 동안 예배를 위해 강단을 지켜온 부서이다. 현재 재적은 69명이며, 한 조에 10여 명씩 6개조가 매주일 돌아가면서 교회 장식을 돕고 있다.


봉사자들은 본인들의 봉사 주간이 되면 목요일 밤 11시 30분에 교회에서 만나 반포 꽃시장으로 향한다. 작품에 대한 주제는 절기에 맞추어 기도하면서 구상을 하며, 그 작품에 맞는 꽃을 구하러 다니다 보면 새벽 2~3시를 훌쩍 넘긴다. 교회에 꽃을 가지고 도착하여 재료들을 정리한 후 물에 담그고 마무리를 하면 어느덧 금요일 새벽기도 시간이 된다. 금요일은 분주한 날이다. 눈을 붙일 겨를도 없이 금요 구역장권찰 베델교육을 위해 집안일을 마치고 다시 교회로 발걸음을 옮긴다.


주일을 위한 꽃꽂이는 토요일 오전 4부 새벽기도를 마친 후 강단에서 바로 진행하며, 주일부터는 관리에 들어간다. 매일 저녁 물을 보충해 주어야 하며, 수요일에는 일찍 시들은 꽃들을 싱싱한 꽃으로 교체해 준다.


꽃꽂이부의 봉사는 강단에 국한되지 않고 교회 내의 각 사무실과 영접실, 식당 등 요소요소에 손길이 미치며, 원주의 치악산명성수양관에서 산상성회가 있거나 집회가 있을 때도 장식을 해야 한다. 또한 영접에 필요한 꽃다발과 화환 등도 만들고, 결혼 예식부에서 생화장식 요청이 들어오면 기꺼이 감당을 하며 수익금은 선교헌금으로 드린다. 꽃꽂이에 필요한 모든 경비는 자체 부서에서 해결하며, 절기 때는 교회에서 지원을 하고 있다.


봉사를 하면서 어려운 점은 부활절이나 창립기념일,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등 교회의 절기행사가 맞물릴 때라고 한다. 그때는 행사 리허설을 주일 예배의 각 부가 모두 모여 전체적으로 준비하기 때문에 강단이 비는 시간에 맞추어 밤 12시에 모여 작업을 시작하여 새벽 3시까지 한다.


봉사자들은 주님의 전을 섬기면서 받은 은혜도 많다. 총무인 송숙희 집사는 처음 봉사를 시작할 때는 심한 빈혈과 B형간염으로 자신의 몸도 추스르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모든 것이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또 다른 총무인 오미옥 집사는 봉사 초창기 꽃을 사기 위해 밤 시장 가는 것을 이해 못 하는 남편으로 인해 마음고생도 많았는데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꽃시장까지 태워주기까지 한다고 했다.


한 분이 입을 열자 여기저기서 간증이 쏟아졌다. 봉사 16년차인 5조 조장 이순미 집사는 시집살이 중 마음이 힘들 때 교회에 나와서 봉사하며 고참 집사님들의 사랑으로 새 힘을 얻고, 영적 훈련을 통해서 믿음도 함께 자랐다고 한다.


4조의 조장인 서영옥 집사는 “꽃꽂이는 단순히 꽃을 꽂는 것만 하는 것이 아니라 꽃을 꽂기 위한 밑 작업이 더 힘들다. 지금은 봉사자의 연령대가 높아져 젊은 분들의 참여를 바란다.”고 했다. 또한 부장인 김용숙 집사는 “꽃꽂이가 말씀보다 앞서면 안 된다. 작품은 각 조별 담당인데 구상자는 기도를 많이 하면서 준비한다. 봉사자들 대다수가 자격증이 있는 분들이지만 섬길 때는 겸손하게 서로를 배려하면서 일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가끔씩 실력향상을 위한 세미나를 열기도 한다.”고 전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주님의 몸 된 성전을 섬기며 은혜를 받는 꽃꽂이부는 진정한 꽃 중의 꽃이며 샤론의 꽃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오늘도 향기 나는 감사의 마음을 드린다.

대학 수능시험을 앞두고 어머니들의 기도소리가 깊어지고 있습니다. 저희 삼남매 중 막내딸의 입시 때였습니다. 그 때 저희 가정은 숨 막히는 어려움 가운데 캄캄한 터널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딸의 대학 입학 문제도 그 중의 한 몫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몇 년 동안 시험에 도전해도 한 학교에서도 합격통지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해 2월, 모든 입학문은 닫히고 3월이 되어 내일이면 3월 특별새벽집회가 시작되는 날이었습니다.


모두가 3월 특별새벽집회를 준비할 때, 저도 마음 속 어두움을 뒤로 하고 꽃가위와 앞치마를 준비하여 경쾌하게 교회로 갔습니다. 감사하게도 저희 조가 꽃꽂이 순서가 되어 꽃을 꽂게 된 것이었습니다. 딸의 대학입학의 기회도 다 지나갔으니 주님께 정성들여 꽃을 드림으로 특별새벽집회에서 주시는 더 큰 은혜를 받으리라는 생각으로 조원들과 찬송을 부르며 즐겁게 꽃을 꽂았습니다. 아무리 괴로워도 주님 전에서 일할 때는 즐거웠습니다.


그때 딸아이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지방에 있는 어느 학교에서 연락이 왔는데 입학을 하려면 30분 이내에 등록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30분 이내에 그 큰돈을 준비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저는 조용히 기도실로 내려가서 주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올라와서 전화로 딸아이를 불러 기도실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했지만 급한 마음에 앞치마 차림에 슬리퍼를 신은 채 다시 기도실로 달려갔습니다.


그때 지하 마지막 계단에서 집사님 한 분을 만났습니다. 우리의 당황하면서도 애타는 모습을 보고 무슨 일인지 물었습니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더니 그 자리에서 등록금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때 고난 중에서도 즐거워하며 주님께 충성할 때, 최선을 다해 제 자리를 지킬 때, 또 간절히 기도할 때 주님께서 예비하신 은혜와 축복을 주신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모든 일에 은혜 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여 꽃꽂이부에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 6조의 한 분 한 분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언제나 인자한 모습으로 우리를 지도해 주시는 권사님, 꽃꽂이 할 때마다 간식을 준비해 오시는 분, 옷가게를 하면서 몹시 피곤한데도 청소와 쓰레기 치우기를 마다하지 않는 분, 10개월 동안 개인사정으로 꽃꽂이에 참여하지 못해도 꽃값을 꼭 송금하는 청년자매도 있습니다. 또 헌화로 우리의 마음을 감동케 하시는 분, 혹시 참여하지 못했을 때는 위로금을 주시는 분, 남편이 편찮으셔서 올 수 없는 입장인데도 꼭 나오시는 분, 심지어는 꽃꽂이부가 아닌 성도인데도 주님께 드리는 마음으로 매월 꽃값을 지원하시겠다는 분도 있습니다.


언제나 조원 모두 빠짐없이 꽃꽂이에 참석하여 주님께 헌신하는 모습에 저는 행복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이 모든 일을 위하여 주님께서 먼저 말씀과 기도로 저희를 이끌어 주시기에 저희 꽃꽂이부는 더욱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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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3대째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에서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불신가정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되었는데, 막상 결혼을 하고 보니 남편을 전도하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신앙적인 이유로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믿음의 가정으로 세우실 것을 믿고 의지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던 중 좋은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연로하신 시어머니께서 편찮으셔서 형제 중 누군가가 모셔야 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형제 중 막내였지만 시어머님과 남편을 전도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자청하여 시어머님을 모시기로 하였습니다. 결국 시어머니께서는 저희 집에 계시면서 세례를 받으셨고, 찬송을 부르는 중에 소천 하셨습니다. 장례도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기독교장으로 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형제들과 남편의 마음 또한 하나님을 향하여 많이 열려져 가고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남편은 젊은 나이에 큰 사업체를 이루어 탄탄대로를 걷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런 화재로 인하여 5,000평 규모의 공장은 모두 잿더미가 되었고, 두 아들과 저희 부부는 빈털터리가 되어 길거리로 내몰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더 이상 서울에서 지낼 수 없어 결국 대전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광야와 같이 어렵고 힘든 시간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꽃꽂이 봉사만큼은 내려놓지 않게 하셨습니다. 주변에 있는 교회들 중 몇 곳에서 꽃꽂이로 섬길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물질적으로 빈곤하여 꽃을 구입하지 못할 때는 산과 들에 피어있는 야생화로 꽃꽂이를 하였고, 개울에 있는 돌을 이용하여 장식하는 지혜도 주셨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남편 또한 저를 도와주어, 남편과 제가 함께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릴 수 있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이후 우리는 대전에서 구미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구미에서는 매주 안동성소병원에서 예배를 드리며 목사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틈틈이 병원 교회에 꽃바구니를 만들어 예배당을 장식할 수 있도록 저를 사용해 주셨습니다.


빈손으로 지방으로 쫓겨 갔던 저희 가정을 믿음의 가정으로 만들어 주시고, 남편에게는 방음재 사업에 관한 수많은 아이디어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그토록 바라던 서울로 다시 거처를 옮길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너무나 비참한 상황을 만난 저희 가정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려움을 통하여 기도하게 하셨고 평안함을 주셨습니다. 머리로만 하나님을 알던 남편은 가슴속 깊이 하나님을 체험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편에게 세계 최고의 제품을 개발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선교를 후원하는 기업으로 만들고자 하는 새로운 비전도 주셨습니다. 또 하나의 축복은 두 아들만 있던 저에게 40세가 넘은 나이에 예쁜 딸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성전에 머물 수도 없는 죄 많고 부족한 저를 25년 동안 성전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도구로 사용하여 주신 은혜입니다. 저는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그 시간을 통해 저희 가정의 믿음이 더욱 견고해졌고, 다시금 주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은혜의 시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꽃꽂이 봉사로 저를 붙잡아 주셨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선교의 마음 또한 허락해주셨습니다. 이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항상 기도하며 지금도 처음 꽃꽂이 봉사를 시작했던 그 마음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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