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구약성경이 보급되지 못한 시절에 하나님께서는 어떤 신앙을 어떻게 교육하셨을까요? 이 질문을 풀어서 설명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느헤미야 8장에 보면 학사 에스라가 모세의 율법책을 백성에게 낭독하매 백성들이 귀를 기울여 들었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모세오경이 학사 에스라의 손에만 있었고 백성의 손에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언서나 그 밖의 책들과 관련해서도 이와 같은 상황은 구약의 시대만이 아니라 실은 불과 몇 백 년 전까지만 해도 큰 차이 없이 지속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절대다수 이스라엘의 손에 구약성경이 없던 시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어떤 신앙을 어떻게 교육하셨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나면 많은 지식이 없어도 구약성경을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대로 잘 읽고 살아내는데 도움이 될 좋은 이해가 생길 것으로 기대하며 첫 글을 열어 봅니다.
2. 솔로몬 성전의 야긴과 보아스를 통한 신앙교육과 그 내용 솔로몬 성전에는 그와 같은 삶을 권고하고 유도하는 특이한 장치들이 있었습니다. 야긴과 보아스라는 기둥이 바로 그런 장치입니다. 야긴과 보아스에 관한 이야기는 왕상 7:13~22, 왕하 25:13~17, 대하 3:15~17, 렘 52:17~23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 두 기둥의 가장 큰 특징은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보아스는 룻기의 등장인물 보아스와 히브리어로도 철자가 같습니다. 히브리어로 <야킨>이라 발음하는 야긴도 사람의 이름으로 곧잘 쓰입니다. 야긴과 보아스라는 두 기둥은 특이하게도 사람의 이름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두 기둥의 특별함은 이름에만 있지 않습니다. 크기와 재료도 특별했습니다. 본문마다 크기에 대한 보고가 다르지만, 두 기둥의 높이는 최소 18규빗입니다. 5규빗 높이 기둥머리까지 치면 23규빗입니다. 규빗은 팔꿈치에서 가운데 손가락 끝에 이르는 길이를 말하는데, 50cm 정도로 보면 야긴과 보아스는 11.5미터 정도 높이의 기둥이었던 것입니다. 그 둘레가 12규빗이었다고 하니 지름도 거의 2미터에 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이것들을 놋으로 만들었습니다. 예레미야의 기록에 의하면 가운데가 빈 놋기둥이었던 것 같습니다. 1980~1985년 기간에 시리아 북부의 <아인 다라>에서 한 신전이 발굴되었는데 추정되는 건축시기가 솔로몬 시대와 맞물리고 크기와 양식에 있어서도 솔로몬 성전과 유사함이 많아 학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이 <아인 다라> 신전에도 야긴-보아스와 유사한 기둥의 터가 남아 있는데 지름이 야긴-보아스 기둥 지름의 절반 정도인 90센티미터에 불과합니다. <아인 다라> 신전의 크기를 고려하면 존재감이 크지 않습니다. 재료도 신전의 재료와 마찬가지로 현무암이어서 특별히 눈에 들어오는 구조물이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이를 역으로 보면, 야긴과 보아스는 정말 특별합니다. 솔로몬 성전의 크기에 비해 볼 때 존재감이 확실히 느껴지는 거대한 구조물입니다. 재료도 성전의 재료와 달리 놋으로 되어 있어서 성전지붕을 받치는 기둥이라기보다 성전 앞에 세워진 독립된 구조물이었을 것이라는 것이 다수의견입니다. 야긴과 보아스는 여러 면에서 정말 특별했던 구조물인 것입니다.
야긴과 보아스가 갖고 있는 이 모든 특별함은 의도된 것입니다. 그 의도를 푸는 열쇠는 두 기둥의 위치입니다. 고대의 성전들은 대개 태양이 떠오르는 동쪽을 향하도록 지어졌는데 솔로몬 성전도 예외가 아니었음을 에스겔 8장 16절 등을 통해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솔로몬 성전의 현관도 태양이 떠오르는 쪽을 향하도록 설계되었고 야긴과 보아스는 그 앞에 세워진 구조물이었던 것입니다. 요컨대, 두 놋기둥 야긴과 보아스는 매일 아침 해가 뜰 때 제일 먼저 그 빛을 받아 반사하도록 설계된 구조물이었고 또 태양이 기우는 늦은 오후까지 강렬한 빛을 발하며 그 존재를 주변에 알리도록 설계된 구조물이었던 것입니다. 솔로몬 성전 시대의 예루살렘 사람들은 강렬하게 빛을 반사하여 눈을 부시게 하던 야긴과 보아스를 하루에도 몇 번씩 주목하며 중얼거렸을 것입니다. “아, 야킨,” “아, 보아스,” 하고 말입니다. 야긴과 보아스는 성전에 갈 때에만 힐끔 쳐다보고 지나치게 되는 그런 구조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 두 기둥은 하루에도 여러 번 자연스럽게 눈길을 돌려 쳐다보게 되고 그 이름을 되뇔 수밖에 없었던 특별한 구조물이었던 것입니다. 솔로몬 성전 시대의 예루살렘 사람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되뇌었을 <야킨>이라는 말은 “그가 세우신다.”는 뜻입니다. “그가 강하게 하신다,” “그가 안전하게 하신다.”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주어인 “그”는 물론 야긴 뒤에 있는 성전의 주인입니다. 여호와입니다. 솔로몬 성전 시대의 예루살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루에도 몇 번씩 되뇌었을 <보아스>라는 말은 “그에게 힘이 있다,” “능력이 그에게 있다” 등으로 이해할 수 있는 말입니다. 주어인 “그”는 역시 기둥 뒤에 있는 성전의 주인 여호와입니다. 야긴과 보아스는 힘과 능력이 오직 여호와께만 있으며 여호와께서 함께 하여 주실 때에만 우리가 굳게 설 수 있고, 안전히 살아갈 수 있고, 넘어져도 회복될 수 있고, 열매 맺는 삶을 살 수 있음을 하루에도 여러 차례 일깨워 주던 기둥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여호와의 집인 성전으로 나아와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할 것을 권고하고 또 그런 마음 갖는 것을 북돋아주던 아주 특별한 교육적 장치였던 것입니다. 야긴과 보아스는 ‘오직 주님’의 신앙과 성전중심의 삶, 성전지향적인 삶을 가르치고 고취하여 주던 교육장치였던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일러 주신 신앙교육의 요체: ‘오직 주님’의 신앙과 성전지향적인 삶 진실로, 우리 교인들에게 익숙한 ‘오직 주님’의 신앙과 성전중심의 삶은 옛적부터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일러 주시고자 하신 신앙교육의 요체입니다. 모리야산 위에 성전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야긴과 보아스가 그 앞에 세워졌을 때, 다음 날 아침 야긴과 보아스가 햇빛을 눈부시게 반사하기 시작했을 때, 솔로몬은 하나님의 설계도에 담긴 분명한 의도를 깨닫고 그 뜻을 온전히 좇아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대하 6:12~42에 있는 그 기도의 내용은 주야로 성전을 지켜보아 주시다가 이스라엘이 성전에 와 기도하거나 성전을 향해 기도하는 것을 보시거든 하늘에서 들으시고 응답해 달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그러한 요지를 20~21절에 말한 후 여러 상황을 들어 그 내용을 반복함으로써 하나님의 설계도가 의도하는 것이 어떤 상황에서든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고 기도하는 삶을 교육하는 것이요, 성전중심적-성전지향적인 삶을 고취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이 깨달음의 기도에 하나님께서는 이런 말씀으로 응답하여 주십니다.
이제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이는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 (대상 7:15~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