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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인가요?

 

우리는 지금까지 고대 가나안 지역이었던 곳에서 발굴된 가나안 사람들의 신전과 블레셋 사람들의 신전을 잠깐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 구약시대에 솔로몬 왕이 건축하였던 성전(제1성전)과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남왕국 유다 사람들이 귀국하여 무너진 성전 터 위에 다시 건축한 두 번째 성전(제2성전)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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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대로 A.D. 70년에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제2성전을 파괴한 후에는 유대인들이 다시 성전을 짓지 못하고 오늘까지 이르렀습니다. 유대인들은 제1성전과 제2성전이 섰던 자리에 다시 성전을 짓고 싶어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성전은 제3성전으로 불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터에는 지금 이슬람교의 황금 돔(둥근 지붕) 성소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 장소는 유대인(유대교인)들과 아랍인(이슬람교도)들 사이에 엄청나게 민감한 곳입니다. 지난 2000년에 이스라엘의 극우파 지도자 아리엘 샤론이 사람들을 거느리고 이 황금 돔이 있는 성전산에 올라갔습니다. 대부분 무슬림(이슬람교도)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에 대해 항의하며 무장 투쟁을 하였습니다. 이것을 팔레스타인의 제2차 인티파다(봉기, 항쟁, 반항)라고 부릅니다. 수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자살테러를 감행하였고 유대인(이스라엘 사람)들도 무력으로 이에 대응하는 악순환이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유대교에는 지금 성전이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회당에서 예배를 드리지만, 야웨 하나님께 짐승을 죽여서 희생제사를 드릴 수 있는 성전을 다시 짓기를 간절히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교에서 발원한 기독교는 교회를 성전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교회’라는 말을 사용할 때에 교회는 건물을 가리킬 수도 있고, 건물 없이 가정이나 어떤 장소에 모이는 신자들의 모임일 수도 있으며, 건물과 신자들을 다 포함해서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라는 말의 복합적인 뜻을 염두에 두고 이 글을 읽어 주시기 바라며, ‘교회’를 ‘성전’이라는 개념으로 말할 때에는 대개 ‘교회 건물’을 중심한 것임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는 성전이 아니다.”라고 합니다. 그런 책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성경구절들과 신학적 이론들을 동원해서 설명을 합니다. 유대교인이 그런 말을 한다면 왜 그러는지 그 배경을 알고 있기 때문에 참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이 그런 말을 한다면 교회가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 “교회는 성전이 아니다.”라고 주장할 때, 우리는 다음 몇 가지 주제들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1) 교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역할)은 무엇입니까? 봉사단체입니까? 놀이터입니까? 클럽입니까? 아닙니다. 교회에서 마지막까지 절대로 없앨 수 없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야웨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가 아닙니까? 제1성전과 제2성전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야웨 하나님을 예배하며 죄 사함을 받기 위하여 희생제사를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에서도 야웨 하나님을 예배하고 제사를 지내는 일이 본질이고 핵심이기 때문에 교회는 성전입니다. 예배하고 제사를 지내는 교회의 본질은 영적인 면에서 보면 구약시대의 두 성전과 다르지 않습니다.   
  

(2) 교회에는 희생제사가 없습니까? 어떤 분들은 교회는 성전에서 행해지던 희생제사가 없기 때문에 성전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말은 옳지 않습니다. 매일, 또는 매번 죄를 지을 때마다 양이나 비둘기를 죽여서 제사를 지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희생제물이 되셔서 ‘단번에’ 우리 죄를 용서하시는 제사를 이룩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확실히 말했습니다(요한복음 1:29, 36).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는 일은 번거롭기도 하고, 시간도 많이 들고, 돈도 많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죄를 지을 때마다 희생제물을 반복해서 드렸고, 또 큰 죄에 대해서는 더 큰 제물이 요구되어 죄인은 죄의 짐과 함께 제물과 시간과 돈의 짐을 동시에 짊어져야 하는 힘겨운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스스로 십자가에서 제물로 죽으심으로 그 무거운 짐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제사는 교회 안에서 항상 유효하며, 신자들은 이 영적 제사에 참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를 용서받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제물이 되신 것을 감사해야 하는데, 오히려 교회가 성전이 아니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는 것이 됩니다. 교회에서 희생제물이 타는 고기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희생제물이 되신 엄청난 고난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야웨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3) 구약성경의 야웨 하나님과 신약성경의 예수 그리스도는 관계가 없는 분들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야웨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같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베들레헴의 양 우릿간에서 출생하신 아기 예수는 다른 분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스스로 인간의 몸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남자와 관계하지 않은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성육신’이라는 신학적인 용어로 설명합니다.
  

 구약성경에 나타나신 야웨 하나님은 일관성 있게 자신의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시며, 신약성경은 바로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 사람들과 함께 이 땅에서 얼마 동안 사셨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라는 말을 하나님께 부인이 계셔서 아들을 낳았다고 생각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 어머니’를 예배하는 교회도 본 적이 있습니다. 야웨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되셨는데, 고대 유대인들과 신학자들은 그 관계를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말한 것뿐입니다. 
  

 예수님은 곧 ‘말씀’이셨고, ‘빛’이셨고, ‘하나님’이셨습니다(요한복음 1:1). 히브리인들이 지은 성전을 인정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지은 교회도 인정하십니다. 그 둘은 별개가 아닙니다. 
  

(4)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은 모두 성경입니까? 그렇습니다. 어떤 분들은 신약성경은 구약성경과 관계가 없다고 말합니다. 역사적으로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들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억지입니다. 구약성경은 신약성경의 기초이며, 신약성경은 구약성경의 완성입니다. 어느 하나가 빠지면 나머지는 불완전해집니다. 두 성경 사이의 관계가 그러하기 때문에 두 성경이 말하고 있는 구약시대의 성전과 신약시대의 교회도 일관되게 영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성전의 영적 유산을 물려받았고, 복음 전파의 사명을 시작하는 모판이 되었습니다. 
  

 즉 구약성경의 성전이 야웨 하나님과 만나려고 모이는 구심적인 역할에 중점을 두었다면, 신약시대의 교회는 그 만남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그 만남에서 오는 은혜(구원)를 알려 주러 나가는 원심적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여전히 성전의 기능을 하는 동시에 심부름꾼의 역할도 하는, 더 무거운 직임을 수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 시대에는 새로운 용어와 모양이 사용되지만 깊은 사상과 개념은 같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이 맞습니다.
 
  이 작은 글에서 교회론의 핵심 주제들을 깊게 다룰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열거하고 생각해 본 여러 가지를 중심으로 판단해 보면, 교회는 성전이라는 확신을 할 수 있습니다.
  금년 성탄절에는 교회에 모여 드는 성도들에게,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희생제물이 되시려고 인간의 몸을 취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한 감격이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고세진 목사(근동 고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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