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gif
1.gif

bar.gif  지난 5월 말, 30여 년 동안 몸담아왔던 원자력계와 3년간의 한전 KPS 전무직을 마무리하는 퇴임식에서 저는 지난 시간의 모든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정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한전과 한국수력원자력에서 생활하는 동안 누구에게 커피 한 잔 대접하지 않고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처장까지 승진할 수 있었고, 3년간의 미국생활과 2년간의 북한생활, 30여 개국의 공무여행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며, 공기업 임원으로서의 직무도 성공적으로 마쳤으니 이 어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물론 작년 여름에 한 차례 아픔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통해 그 어떤 사람도, 어떤 권력도 의지하지 말고 오로지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하라는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그 후 제 믿음은 사람에게 보이려는 믿음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보이는 믿음(코람 데오)으로 성숙해졌습니다.

 

 퇴직 후 한 달간의 여유를 즐긴 후 7월부터 주신 새 직장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일터임을 믿습니다. 대산열병합발전(주)의 CEO인 제 집무실의 중앙에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그림이 걸려 있고, 10년이 넘도록 전파선교사로 섬겨온 극동방송에서 보낸 십자가가 걸려 있어 처음 보는 사람들 중에는 이곳이 사무실이냐고 놀라는 이들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 성화에 새겨진 “Where are you going?”이란 문구는 주님의 부활 후 실망하여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처럼, 나 또한 하나님 보시기에 안 좋은 길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수시로 자신을 되돌아보는 마음의 거울로 여기고 있습니다.

 

 저는 성경의 많은 인물 중 요셉을 가장 좋아합니다. 이는 요셉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요셉뿐만 아니라 그 주변과 범사가 형통하게 된 것처럼 나를 통하여 내 주변이, 특히 새로 시작하는 회사가 형통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지난 세월 동안 심히 부족한 저를 세워 영광 받으신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형통한 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기로 다짐하며, 거짓과 불법과 교만을 멀리한 채 순결하고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하여 오늘도 성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를 바라보며 하루 일과를 주님과 함께 시작합니다.

 

bottom.gif

 

 

top.gif
2.gif

bar.gif 저는 1971년도에 세례를 받고 교회에 다녔으나 그 후 33년 동안 우상을 섬기며 방황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남동생의 권유와 구역식구였던 김 집사님의 도움으로 2005년 추수감사절에 명성교회에서 첫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날 마당에서 먹은 국밥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주님을 영접하기 전에는 항상 마음에 평안이 없었는데 주님을 영접하고 나니 마음에 평강이 생겼습니다. 또한 밝고 긍정적인 사고와 함께 가정의 문제들이 하나둘씩 해결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은혜를 받으며 잘 지내오던 중 2010년 9월 27일, 형제들과 친척집에 다녀오다가 그만 사고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서해안 고속도로에 놓여 있던 36미터의 쇠파이프가 차 뒷좌석을 뚫고 들어와 나의 꼬리뼈 척추 쪽을 24센티미터 정도 관통하게 된 것입니다. 그 순간 저는 형제들에게 기도하라고 외쳤고, 의연하게 구역식구에게 전화하여 기도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피를 흘렸지만 저는 정신을 놓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혈우병 걸린 여인이 주님의 옷자락을 잡기만 해도 나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병 고침을 받은 것처럼 병상에서 주님께 매달리며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과 ‘예수는 나의 힘이요’를 마음속으로 항상 찬양했습니다. 저는 ‘왜 하필 내가 다쳤을까?’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사고 당시 함께 있었던 형제들에게 “너희들은 다치지 않고 나만 다쳐서 다행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의사선생님들과 간호사들은 항상 밝은 모습으로 병원생활을 하는 저에게 어쩌면 그렇게 항상 밝게 생활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힘든 투병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웃음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주님께서 함께하셨기 때문에 그 어려움 가운데서도 웃을 수 있었습니다. 수술한 후에도 하반신이 마비되거나 파상풍으로 위험할 수 있다고 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났습니다. 8개월 동안 병원에 있었으나 지난 5월 말에 퇴원하여 믿음생활 잘하고 있으며, 당회장목사님을 비롯하여 교구목사님과 구역식구들의 기도와 도움으로 점차 회복되어 가고 있습니다. 올 4월에는 주님의 은혜로 작은아들이 결혼했으며, 이들 부부도 교회에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새 성전 건축이 시작되었을 때 사모하는 마음으로 건축헌금을 작정하고 기도했지만 봉헌할 수 없었는데, 이번에 합의금 조정이 잘되어서 그동안 못 드렸던 십일조와 건축헌금을 봉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것은 하나님 앞에 극히 보잘것없지만 아름다운 성전이 잘 건축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봉헌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bottom.gif
top.gif
3.gif

bar.gif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미션스쿨에 입학한 저를 아버님께서 고등학교에 다닐 동안만 교회 나가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절친한 친구였던 “서희건설” 이봉관 장로님과 사모님을 대구 중앙교회로 등록시켜 주일 저녁 찬양대까지 하며 즐겁게 교회생활을 하였지만, 졸업 후에는 각자 다른 대학으로 진학하였으며, 저의 교회 생활은 흐지부지 되었습니다.

 

 그 후 서울의 믿는 집안의 외며느리로 시집와서 옛날 즐거웠던 추억만 생각하며 교회에 나갔지만, 권사님이신 시어머님의 고된 시집살이와 형식에 치우친 교회생활은 도무지 기쁨이 없어 온전한 믿음 생활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86년에 삼익그린 아파트로 이사와 우연히 명성교회 저녁예배에 참석하게 되었고 목사님의 말씀이 너무 좋았습니다. 시어머님의 핍박이 심했지만 본 교회 예배 후 명성교회 주일 낮 예배도 참석하여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한 가정에서 두 교회를 섬기지 말라는 시어머님의 강한 권고로 소천하신 후 늦게 명성교회 등록하였고 남편과 저는 새신자 교육까지 받으며 주어진 직분을 잘 감당하며 명성교회에서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남편은 남선교회 회장과 피택 안수집사 훈련 중 소천 하였습니다. 남편이 5년 동안 간암으로 병원관리를 받았지만 한 번도 예배와 맡은 직분을 소홀히 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병중이지만 추울 때나 더울 때나 장애인 올라오는 자리에서 휠체어를 끌며 3부 실외 안내 봉사를 하게 하시고, 마지막 입원 했을 때 남편은 지금까지 지내온 것은 너무나 큰 주님의 은혜라고 했습니다.

 

 한 번의 통증도 없이, 신앙생활 잘하고, 화목하게 잘 지내라며 본인 성격과 같이 따듯한 봄날, 교구장님과 권사님들과 함께 드린 임종예배 후 편안하게 자는 듯이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슬펐지만, 감사했습니다. 남편에게 건강을 허락하셔서 아름답고 거룩한 성전이 완공되어 같이 안내 봉사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 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약정한 건축헌금을 즐거운 마음으로 다 드리고 나니 너무나 큰 주님의 사랑과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은혜가 마음 속 깊은데서 밀려왔습니다. 혼자 남겨진 저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위로의 손길을 느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 가족 모두(딸, 아들 가정) 명성교회로 인도하시고, 모든 것 형통하게 하시고, 부족한 저를 피택권사로 세워주시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하나님 사랑 안에서 저를 지키며 인내와 소망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삶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명성교회 사랑합니다. 당회장 목사님 감사합니다.
 

bottom.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