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가 넘은 한 할머니는 150cm도 안 되는 키에 허리까지 굽어 한없이 작아 보였습니다. 언제나 낡은 모자를 쓰고 있는 독특한 외모의 할머니는 무표정해 보이지만 한번 대화의 문을 시작하면 말씀을 재미있게 잘하셨습니다. 할머니는 진료가 끝나기 전 30분~1시간 전에 오실 때가 많고, 진료가 끝나면 차에 모시고 마지막에 내려드리고 헤어졌습니다.
할머니는 헌금하는 것이 좋아서 종이 모으는 일을 하고 걸어 다니는 것에는 이력이 났지만 제가 봉사하는 날에는 차를 타고 가셨습니다. 처음 침을 맞으시던 날, 80평생 살아오신 이야기를 끝없이 하셨습니다. 울릉도에서 남편과 재미있게 살았던 이야기, 미국에 있는 딸 덕분에 미국 구경하신 이야기, 본적을 알 수 없는 사투리에 듣기 싫지 않은 욕도 섞어가면서 신나게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진료를 받으실 때 잘 웃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저 입맛이 없다, 소화가 잘 안 된다는 호소뿐이었는데 지난겨울에는 자주 복통을 호소해서 조금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할머니가 가장 많이 자랑하시던 것은 당회장목사님께서 악수하고 기도해 주셨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초창기 성도이기 때문에 목사님과 함께한 시간들을 떠올리는 것이 할머니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저는 진료할 때마다 다른 분들이 시샘을 할 정도로 “할머니 울릉도 사실 때 어땠어요? 미국에 또 안 가세요? 서산에 사는 딸에게서 아직 연락이 안 옵니까?”라는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그런데 지난겨울 어느 날부터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수소문하니 주무시다가 조용히 하늘나라로 가셨다고 합니다.
저는 한의원에서는 침을 놓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상담을 오래 하다보면 침을 놓으러 들어갈 시간이 없어 보통 부원장에게 맡기는 편이고 필요에 따라 몇 개 정도 놓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봉사지에서 진료를 하고 침을 놓을 때는 그분과 교감하며 신앙이야기, 옛날이야기, 인생이야기 등을 주고받을 뿐만 아니라 마음도 주고받습니다. 침이나 약보다 마음이 더 중요하며, 치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런 마음과 즐거움이 없다면 일주일 내내 환자를 진료하고 또 주일이나 공휴일마다 의료봉사를 다닐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달동네에 갈수록, 해외 오지에 갈수록, 더 어려운 분들을 만날수록 더 큰 감동을 받습니다. 그래서 의료봉사는 내가 누구에게 무엇을 주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내가 더 감동을 받고, 은혜를 받고 재충전이 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입니다. |
‘병은 하나님께서 고치시고 의사는 도울 뿐입니다’ 아들이 어렸을 때 자주 가던 병원 현관 위에 걸려 있던 현판의 문구입니다. 이상하게도 병원을 드나들 때마다 그 문구를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었지만 병은 의사가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저에게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병원의 원장님은 장로님이셨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 그 병원은 없어졌지만 그간에 수많은 환자들을 보면서 의료인은 하나님을 도울 뿐임을 제 마음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현대의학이 발달하여도 하나님의 치료영역을 범접하기에는 역부족임을 현장에서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의료선교위원회 위원으로 임명을 받은 것은 10여 년 전입니다. 보건의료단체에 근무하는 간호사이지만 임상근무를 하지 않고 보건사업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황했지만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전혀 다른 분야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몸이 약해지면 마음도 약해진다’는 말은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 하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치료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경험하여 겉 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강건해 지기를 원합니다. 새 성전 시대를 맞이하여 우리 교회에 속한 많은 의료인들이 국내·외 선교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기도하여 하나님 나라가 더욱 확장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부족하지만 귀한 달란트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국·내외 의료선교활동을 통하여 따뜻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데 한 몫을 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