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와 한국교회

장로회 신학대학교 선교학 교수, 한국일목사

유교의 핵심은 ‘인(仁)’과 ‘예(禮)’에 있다. ‘인(仁)’은 남을 사랑하는 마음이며, ‘예(禮)’는 예의 바르게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가르침을 행하기 좋은 가장 가까운 대상이 바로 부모와 형제자매이다.


유교에서는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는 물론 돌아가신 후에도 인과 예를 실천해야 한다고 가르치며, 돌아가신 부모님을 향한 인과 예는 정성을 다한 제사로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유교의 제사가 무속적인 기복신앙(무교)과 결합하면서 제사의 본래 가치인 ‘정성’의 의미가 퇴색되고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사를 지낼 때 ‘조상신에게 음식을 잘 차려 놓고 잘 모시면 복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는 생각으로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이 많다.


무교에서는 사후에 죽은 자가 귀신이 되어 떠돌다가 제사(또는 고사)음식을 받아먹으며, 자손들의 태도에 따라 재앙과 복을 결정한다는 사상이 깔려 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에서 조상의 제사를 반대하는 중요한 이유이다. 이와 같이 제사에 대한 두 가지 첨예한 입장(단순한 추모인가, 또는 신령에게 기원을 드리는 것인가) 속에 유교와 무속의 혼합된 사상이 공존하여 제사가 진행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러한 현실에서 기독교가 조상의 제사를 허용할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이나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성경은 제사에 대해서 어떻게 가르치는가?

제사에 대한 기독교적인 교훈을 말한다면 바울의 예를 들 수 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 23절에서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씀을 제사와 관련해서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다.


기독교인이 제사에 함께 참여하는 것은 ‘가(可)’한 행동일 수도 있다. 성도는 기본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이 ‘유익하거나’ 혹은 ‘덕을 세우는 행동’은 분명히 아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조상이 귀신이 되어 제사에 임하는 후손들의 태도에 따라 복을 주거나 벌을 준다는 무교와 혼합된 그릇된 생각으로 제사에 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제사에 참여하여 절을 하게 되면 제사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유익하지 않을 뿐더러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는 행동이 되는 것이다. 성경에서 바울은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전 8:9)고 권고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명절날 가족과 친지를 만나 서로 교제하는 행위 자체는 매우 좋은 것이다. 기독교인이기 전에 한국인으로, 소중한 문중의 일원으로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한다면 가족들의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자녀들에게 자신의 뿌리와 혈연적 유대감을 갖게 하는 것 또한 매우 당연한 일이다. 제사에 반대한다고 해서 즐거운 모임 자체를 무조건 비난하거나 아예 가족이나 친지들과 담을 쌓고 살아가는 것은 기독교로 초대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막아버리는 잘못된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로 인하여 오히려 기독교에 대한 편견으로 복음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기독교인은 기독교인으로서 바른 신앙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기독교 역시 가족과 조상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을 여러 가족과 친지들에게 공손히 전해야 한다. 그리고 기독교가 제사에 반대하는 이유를 차분히 설명한 후 제사 예식이 진행될 때에 거부감 없이 여러 가족들과 친지들을 위해 기도한다. 특히 평소에 어려운 환경에 있는 친지들을 자주 챙기며 그들을 위로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한다면 기독교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바꿀 수도 있고, 기독교에 대해 마음이 열릴 수도 있을 것이다.


제사는 여전히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는 쉽지 않은 문제이다. 각 가정마다 독특한 문화와 정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지혜를 구할 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실 것을 약속하고 있다(약 1:5). 가정마다 제사라는 어려운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주님의 지혜를 구하며 믿지 않는 가족들을 복음으로 초대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동시에 기독교에 대한 확고한 정체성을 가지고 기독교인으로서 바른 태도를 취해야 한다.
이번 구정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온 가족이 사랑을 나누는 즐거운 명절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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