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WCC 총회를 부산에 유치했습니다. 한국 교회의 경사입니다. 한국 교회가 하나 되는 감동적인 잔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WCC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WCC가 용공이고, 보수적이 아닌 자유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으며, 구원관에도 문제가 있고, 이 종교 저 종교 다 뒤섞어 짬뽕(?)종교를 만들려는 종교혼합주의의 성향을 보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유일성을 부인하고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종교다원주의를 신봉한다는 등의 비판입니다. 그러나 WCC를 향한 이러한 비판들은 논리적인 오류와 여러 오해 때문에 생긴 비판들입니다. 몇 몇 문장이나 사소한 단어들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하거나, 전체의 의도를 파악하지 않고 사소한 부분을 의도적으로 강조했기 때문에 생긴 오해입니다. WCC가 주장하는 사상들의 배경, 의도, 목적을 무시하고 비판자 자신의 관점에서 비판하거나, 문헌들을 정확하게 밝히지 않고 비판자의 의도대로 단정하거나, 몇몇 일부사람들의 견해를 전체의 견해로 판단하거나, WCC의 구성이나 설립 의도나 목적 등을 고려하지 않고 자료들을 해석하는 것들입니다. 어떤 글들은 전혀 설득력이 없는 우격다짐으로,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사실상 여기서 모든 오해나 비판들에 일일이 다 해명하는 것은 지면상 어려운 일이므로 핵심적인 비판, 즉 WCC는 종교다원주의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는가, 사회구원만 강조하는가 하는 문제들로 좁혀서 오해를 풀고자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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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 - 사회구원(사회선교)에만 관심을 갖는가? 이 비판에 답변하기 전에 동일한 논리로 “당신들은 사회의 악, 인권, 억압, 그리고 독재나 민주화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왜 오로지 개인 영혼에만 관심을 쏟는가? 그러니 당신들은 현실도피적인 사람들이 아닌가?”하는 반론을 던질 수 있습니다. 실상 그들은 WCC를 비판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들 진영에서 이미 “우리는 통탄할 죄를 범했다. …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격리되는 죄를 범했다. 이 격리는 비성경적이다. … 우리는 너무나도 빈번히 성경의 원리들을 인종차별, 전쟁, 인구폭발, 가난, 가정 붕괴, 사회적 혁명 및 공산주의 등의 문제에 적용하지 못했다”(1966년 휘튼선언), “우리는 사회참여에 소홀히 해온 것과 복음전도와 사회적 관심이 상호배타적이라고 생각해 온 것을 회개 한다”(1974년 로잔대회선언)고 말한 바 있기 때문입니다. WCC가 사회참여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관심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비판받아야 할 태도는 아닙니다. 보완이 필요할 뿐입니다. 실제로 우리의 눈을 돌려서 사회를 바라본다면 우리는 심각한 사회문제에 둘러 싸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쟁, 동성애, 자살, 마약, 우울증, 가난, 양극화, 가정해체 등..... 그 어느 것 하나도 교회가 외면해서는 안 되는 문제들입니다. WCC는 일찍부터 이런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고 해결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사회구원이 강조되었던 웁살라 총회 당시의 사회는 폭력적 학생운동, 마틴 루터 킹과 존 F. 케네디의 암살, 월남전, 남미 독재자들의 폭압 등으로 인한 혼돈의 시대였습니다. 어찌 교회가 이러한 문제에 무관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시대적 상황을 이해한다면 WCC가 사회문제에 왜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가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WCC가 억압받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소외당하는 사람들 편에 서려고 했던 것은 비판받을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칭찬받아 마땅한 행동입니다. 당시의 교회는 이미 충분히 개인영혼의 구원을 강조하고 있었기 때문에 WCC가 사회문제에 관심을 쏟는 것이 균형을 위해서도 더 적절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WCC가 개인구원을 전혀 강조하지 않았던 것도 아닙니다. 이미 WCC 안에는 영혼구원을 강조하는 복음주의 계통의 신학자들이 들어와 있었고 그들의 영향이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973년 방콕대회는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을 동시에 균형 있게 강조하는 대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특히 1982년에 선포된 ‘선교와 전도: 에큐메니컬적 확인’이라는 WCC 문서는 개인구원과 사회구원, 복음선포와 사회에 대한 관심, 개인의 회심과 사회의 변혁이라는 균형 잡힌 입장을 잘 대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WCC가 영혼구원을 인정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사회구원만을 강조한다는 것은 적절한 지적이 아닙니다. WCC - 자유주의인가? WCC 반대 진영의 한결같은 시도는 WCC에 자유주의 딱지붙이기입니다. 자유주의나 종교다원주의적 성향을 보이는 몇몇 신학자들을 이유로 “WCC 전체가 자유주의다”라고 말하는 것은 대단히 성급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역으로 그 안에는 복음주의적인 학자들이 있으므로 WCC는 복음주의라고 규정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WCC는 보수주의니 자유주의니 하는 딱지를 붙일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WCC 안에는 동방교회, 루터교회, 장로교회, 감리교회, 오순절 교회 등, 아주 다양한 회원교단들과 다양한 입장들을 가진 신학자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WCC는 다양한 신학적 주제들을 다루고 있지만 자체의 신학이 이것이다 저것이다 규정하지 않습니다. 규정하는 순간 신학이나 사상이 서로 충돌되어 분열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WCC 총회에 초대되어 어떤 주제나 입장을 발표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WCC의 입장으로 보지 않습니다. 다만 중앙위원회나 총회의 결의를 거처 발표한 문서만이 WCC의 공식입장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WCC는 자유주의일까요? 그들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토론토 문서를 보면 그들의 신학적 입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문서는 “WCC는 성경에 따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그리고 구세주로 고백하며, 따라서 한 하나님 즉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공동의 부르심을 함께 이루어 가려는 교회들의 친교이다”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성경의 권위의 인정,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고백,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 되심과 구세주 되심을 그들의 공통고백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해볼 때 WCC를 단순히 자유주의라고 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라고 아니 할 수 없습니다. WCC-종교다원주의인가? 우선 종교다원주의가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용어는 여러 의미로 사용될 수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으므로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세주일 수 없다”는 견해를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절대성을 부인하고 다른 종교에도 구원의 길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WCC는 이런 의미의 종교다원주의를 신봉하고 있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WCC의 공통적인 생각과 비전을 가장 잘 읽을 수 있는 토론토 문서에 한 번도 종교나 다원주의라는 말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설사 WCC 안에 종교다원주의자가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WCC를 대변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종교, 즉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의 교리를 한 데 섞어 새로운 교리를 만든 적도 없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선교와 전도: 에큐메니컬적 확인’이라는 문서는 분명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 곳에서도 그리스도 밖의 구원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문서는 “복음 선포의 출발점은 그리스도, 특히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이시다”라고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WCC 운동이 종교다원주의라고 비판을 받는 이유는 아마도 종교 간의 대화를 강조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WCC는 종교 간의 대화를 중시하겠습니까? 종교 간의 갈등을 해결하고, 서로의 평화공존을 모색하며, 인류의 공동의 선을 위해 함께 노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화는 반드시 합의를 하거나 서로에게 설득당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더욱 분명히 하는 것도 대화입니다. 결론적으로 WCC 운동을 복음과 그리스도 밖에도 구원의 길이 있다는 종교다원주의와 동일시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제 2013년이 한국 교회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좀 더 성숙해지고 또한 함께 세상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그리스도의 몸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