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와 군대 생활을 마치고 삶의 현장에 들어온 지 35년, 그리고 환갑을 맞이하는 새해를 바라보면서 지난날을 묵상하는 기도를 시작했으나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말 외에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습니다.
수출의 역군으로 지낸 17년의 직장생활 동안 전 세계 88개국을 돌아다녔고, 해외주재 8년의 경험과 동구권을 개척하며 수많은 공산권 지도자들과의 만남도 있었습니다. 80년대에는 처음으로 북한과 교역을 시작하여 전용 공단을 신설했고, 평양과 지방 도시들을 방문하면서 19세기로 회귀한 것처럼 보이는 북한의 실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후 여러 차례의 북한 방문에서 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악화되는 북한 주민들의 삶을 보며 가슴 아파했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아무것도 아닌 시골 청년을 사랑하셔서 세상을 마음껏 활보하며 활동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억만 번의 감사 외에는 더 드릴 기도가 없습니다.
개인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 세상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를 경험했습니다. 처음 5~6년은 거의 매일 “주님, 너무나 힘이 듭니다. 차라리 저의 생명을 거두어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하고 몸부림치며 부르짖었지만 주님께서는 조용히 바라만 보셨습니다. 그리고 가끔씩 “신묵아, 내가 너를 축복하리라.”는 미세하지만 분명한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또한 당회장목사님이 꿈에 찾아오셔서 위로와 권면의 말씀을 해주셔서 어려운 시기를 잘 넘겼던 것을 생각하면 이 또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직원들의 월급을 제 날짜에 지급하지 못하여 괴로웠던 때도 있었으며, 주머니에 돈이 하나도 없어서 점심을 굶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수출 위주였던 사업이 점점 확대되고 마침내는 상장회사가 되어 TV와 신문에 제 이름과 얼굴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축구선수 박주영의 골 세리머니처럼 저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역시 감사할 따름입니다.
최근에는 심장병으로 쓰러지기 직전에 제 발로 병원에 가서 즉시 시술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만약에 그대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더라면 삶이 끝났거나 고단한 삶이 되었을 것인데 하나님께서 미리 알게 해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또 예상하지도 않았던 많은 성도님들의 기도와 도움에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언제나 즐거운 일들과 함께 여러 가지 문제와 어려움도 다가옵니다. 그러나 당회장목사님께서 늘 따라하라고 하시는 말씀처럼 “나는 승리하리라! 나는 잘 되리라!”를 외치며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단 하루도 빠질 수 없는 새벽기도, 찬송과 기도와 말씀 묵상, 나의 재능이나 물질이나 경험도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내 소유(ownership)가 아니고 내 보유(retention)일 뿐입니다. 이러한 생각으로 언제든지 하나님께 돌려 드릴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십일조로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결혼 적령기의 두 아들에게도 굳건한 믿음 위에 근면, 검소, 긍정과 적극성, 건강, 교양과 예술적 재능을 갖추도록 가르치고 있으며, 또한 그런 배우자를 맞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두 아들이 모두 건강하고, 지금은 학업을 모두 마치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걱정 없이 다소 사치스런 권면을 할 수 있음을 생각하면 역시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기도 외에는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뒤돌아보면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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