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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4일(화) 오후 3시, 당장이라도 눈이 쏟아질 것처럼 하늘이 낮게 내려앉은 날, 강동구 천호1동에 있는 명성선교복지관 ‘가나안의 집’을 향했다.
 밝은소리 취재진은 ‘가나안의 집’에 사는 이선희 사모와 윤애란 사모를 만나 이선희 사모 집으로 갔다. 장학관 사감으로 있는 이선희 사모의 집은 현관문에 빨간 모자를 쓴 눈사람 인형이 달려 있어 성탄절을 느끼게 해주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내부는 깔끔하고 아늑하게 꾸며져 있었다.

이선희 사모: 사는 모습도 찍는다는 연락을 받고 베란다 청소까지 하느라 팔이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호호!”
 

밝은소리: 이곳에서 사신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이선희 사모: 7년 정도 됐습니다.
 

윤애란 사모:: 저도 그 정도 됐습니다.
가나안의 집에 사는 홀 사모들은 총 일곱 가정이 한 구역으로 구역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지난해 연말에는 최우수 구역으로 상도 받았다.
 

밝은소리: 가나안의 집에 오신 시기가 모두 비슷한가요?
 

윤애란 사모: 전에 살던 지역이나 들어온 시기가 다 다릅니다. 이선희 사모님은 전부터 명성교회에 다니셨지만 다른 분들은 전국 각지에서 오셨어요. 경상도, 전라도, 그리고 아프리카의 부르키나파소에서 오신 분도 계십니다. 그 사모님은 선교지에서 목사님이 소 떼를 피하려다가 차가 전복되어 소천하시는 바람에 이곳으로 오시게 되었습니다.”
 

 윤애란 사모는 울산에서 조그만 교회를 섬기고 있었는데 목사님이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서 다음날로 소천하셨다고 한다. 교회에서는 윤 사모의 거처가 생길 때까지 사택에 머물기를 권면했지만 당장 후임으로 오시는 분에게 비워줘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넓은 땅에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갈 곳이 없었다.
 

윤애란 사모: 전에는 예수님이 늦게 재림하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목사님이 가시고 나니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교회 뒷마당에서 혼자 하늘을 바라보며 ‘예수님이 지금 재림하셨으면 좋겠다.’라고 읊조렸습니다. 그러던 중 아는 목사님이 명성교회에 홀 사모를 위한 시설이 있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때는 저희 가족이 머물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습니다.
 

밝은소리: 요즘은 어떤 기도를 하고 계십니까?
 

이선희 사모: 작은아이가 고3이지만 대입을 놓고 특별히 기도하지는 않습니다. 주님께서 분명히 잘되게 하실 줄 믿으니까요.
 

윤애란 사모 아이들 얘기를 하니까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가 생각납니다. 첫째가 초등학교 2학년, 둘째가 여섯 살 되던 해에 올라왔는데, 둘째는 어려서 괜찮았지만 첫째는 충격이 컸나 봐요. 갑자기 아빠가 돌아가신 후 환경이 바뀌고, 엄마도 직장에 다니느라 아이가 등교하기 전에 먼저 출근하다 보니 적응을 못해 심각한 지경까지 갔습니다. 할 수 없이 밥이랑 김치 한 가지만 먹더라도 아이들에게 전념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가나안의 집’에 영양사 자리가 생겨 아이들을 돌보면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밝은소리: 주위의 시선 때문에 마음 아픈 적은 없었는지요?
 

윤애란 사모 우리끼리 있을 때 “유관순처럼 검정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고 다녀야 긍휼히 여기고, 사모다운 모습이라고 할까?”라는 농담을 하곤 해요. 세상 사람들은 소위 팔자가 세서 이렇게 산다고 말하지만 저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이 부르셔야 가는 것이잖아요. 
 

이선희 사모:우리가 모여 사는 것처럼 목사님들도 하늘나라에서 함께 모여 우리보다 더 즐겁게 지내실 거라고 우스갯소리를 해요. 이제는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졌어요. 이렇게 되기까지는 같은 처지의 삶을 사는 사모님들이 큰 위로가 되었지요.
 

윤애란 사모 저희는 여자로서 가장 큰일을 치르고 나니까 모든 것을 다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게 되었으며, 그 깨달음 때문에 아이들에 대해서도 다 내려놓고 주님께 맡기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그 부분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풍족하지는 않아도 하루하루 감사함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선희 사모: 엄마니까 아이들을 키워야 하고, 계속 살아야 하니까 그 아픔에 멈춰 있을 수가 없었어요. 하나님께서 계속 채찍질하듯이 멈춰 있지 않게 하시고, 아픔과 동시에 때마다 은혜를 주셔서 그 은혜 안에 살아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밝은소리: ‘가나안의 집’이 자신에게 어떤 존재인지 한마디로 정의하신다면?
 

이선희 사모: 가나안의 집은 어머니의 뱃속과 같습니다. 우리를 살아가게 하고, 교회로부터 영과 육의 양식을 공급받게 하고, 우리를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견고한 보호막이자 생명줄이기 때문입니다.
 

윤애란 사모:  ‘가나안의 집’은 감사 그 자체입니다. 외부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저는‘감사’라는 단어로는 우리의 감사한 마음을 다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고마운 곳입니다. 우리와 아무 연고도 없는 명성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게 하시고, 자녀들이 믿음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과 명성교회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우리 자녀들도 남을 위해 베풀고 나누며 감사하는 삶을 살기를 항상 기도합니다.
 

밝은소리: 오랜 시간 은혜로운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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