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동네 친구들의 인도로 처음 교회에 나갔는데 벌써 60여 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그 교회는 동네에서 약 3~4km쯤 떨어진 곳에 있었으며, 겨울에 교회에 가려면 바람이 매우 세게 부는 들판을 지나 다시 신작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가야 했습니다. 어느 해 가을 예배시간이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다음 주일에는 집에서 수확한 곡식을 가지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콩 한 줌도 좋고, 집에서 수확한 곡식이면 무엇이든 좋다고 하셨습니다. 콩 한 줌이라는 말씀이 뚜렷이 기억에 남아 진짜 콩 한 줌을 주머니에 넣고 교회에 갔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가보니 다른 친구들은 큰 무나 호박을 몇 개씩 가져오기도 하고, 자루에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곡식들을 담아오기도 했습니다. 저는 주머니에 있는 한 줌의 콩을 차마 내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른 척하고 그냥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시절에는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마룻바닥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모두 무릎을 꿇고 기도드리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주머니에 있던 콩이 그만 마룻바닥으로 쏟아져 버렸습니다. 콩 쏟아지는 소리가 얼마나 크게 들리던지 저는 너무나 당황해서 쏟아진 콩을 황급히 다시 주워 담았지만 어떻게 예배를 다 드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단지 한없이 부끄러워서 다른 사람들을 쳐다볼 수 없었다는 기억만 있습니다. 해마다 추수감사절이 다가오면 그때 그 부끄러웠던 기억이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 제가 지금 바른 감사의 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금까지의 삶을 뒤돌아보면 스승과 친구, 친지 등 인생의 고비마다 도움을 주었던 여러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또 다른 감사의 의미를 체험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어렵고 복잡한 일을 해결할 때 다른 사람의 조언이나 위로가 오히려 짐이 되고,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오직 저 혼자 결단하고 해결해야 하는 일들을 만날 때, 그리고 그 고민이 깊어져 앞을 예측할 수 없을 때, 저는 저의 길을 밝혀 주시는 하나님을 간절한 마음으로 찾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언제나 뚜렷한 방향과 목표를 알려주시고, 결과에 대한 확신과 용기와 평안을 주십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 한없는 감사를 드리고 싶은데 언제, 어떤 방법, 어떤 내용으로 감사를 드려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 옛날 콩 한 줌의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섭니다. 오늘도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면 콩 한 줌의 헌물도 기쁘게 받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 깊숙이 은혜의 물결로 다가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제는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감사드리겠습니다. |
저는 30년 전에 명성교회에 등록하였습니다. 직장생활 중에는 함께 일하던 동료들과 구역예배를 드렸고 일이 힘들어도 특별새벽집회에 꼭 출석하였으며, 즐겁게 신앙생활을 하며 교회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남편의 직장으로 인해 목동에 월세 방을 얻어 정착하였지만 주님의 은혜로 내면에는 풍요로움과 평안이 넘쳤습니다. 그런데 첫째 다솔이가 열 달을 채우고도 1.2kg의 미숙아로 태어났습니다. 아이는 엄마도 보지 못한 채 인큐베이터에서 자랐습니다. 한 달 뒤 다솔이는 2.2kg이 되어 퇴원하였지만 감기에 걸려 심장판막과 보호막 사이에 물이 차게 되어 위험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수술도 못하고 약도 없어 앞이 막막했습니다. 그때 목사님을 찾아뵙고 기도를 받은 후 깨끗이 낫게 되었습니다. 담당의사 선생님은 다솔이의 병이 나은 것이 기적이라고 했습니다. 다솔이는 그때의 병으로 인해 키는 작지만 건강하게 자라서 지금은 유치부 교사로, 또 대학부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셋째 예찬이가 백일 전에 감기에 걸려 한쪽 목 근육 발달에 이상이 생겨 목이 돌아가는 증상이 생겨 물리 치료를 받았지만 회복될 기미가 안 보였습니다. 저희는 또 목사님께 기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주님께서 예찬이의 목을 치료하여 주셨습니다. 저는 주님께 이렇게 많은 것을 받았음에도 구역장으로 섬기라는 말씀에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운 마음과 돈 버는 일에 마음을 더 뺐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물질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때서야 제 자신을 뒤돌아보니 부끄럽기 한이 없었습니다. 그 후 회개하며 구역장 직분을 감사함으로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심한 시집살이에도 믿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교회에 덕이 되지 않을까봐 참고 믿음으로 기도했는데 지금은 시댁식구들 모두 본 교회를 섬기며 주님 안에서 화목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또한 남편은 안수집사가 되어 주일 1부 예배 헌금부장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
저는 믿지 않는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적에는 시골에 살면서 농사일로 바빠서 교회에 다니는 일은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동네에 안방 교회가 들어서면서부터 아버지의 반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서울로 이사를 왔는데 큰 오빠가 술만 먹으면 교회에 다니는 것을 심하게 핍박하여 어렵게 믿음 생활을 했습니다. 어느 날 기도원에 올라가서 기도하는데 어머니를 전도하는 것이 가정 복음화를 위한 최우선이라는 응답을 받고 내려오자마자 곧바로 어머니에게 성경책을 선물하며 전도했습니다. 놀랍게도 어머니는 그 주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집안으로부터의 핍박이 더 심해졌습니다. 어머니는 믿음생활 중에 몇 번 흔들리기도 하셨지만 하나님과의 약속을 생각하며 세례도 받고, 함께 기도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결국 역경 속에서도 기도로 승리하신 어머니는 섬기시던 교회에서 전도왕이 되셨고 지금은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저는 믿는 남편과 결혼하여 1998년에 온 가족이 명성교회에 등록했습니다. 교회를 통하여 주시는 은혜를 받으며 신앙생활을 하던 중, 2000년 추석에 시댁식구들과 함께 차 안에서 목사님 설교 테이프를 들으며 서울로 올라오던 중 중앙분리대와 가드펜스에 부딪치는 큰 교통사고를 냈습니다. 타고 있던 차량의 앞부분이 반 이상 찌그러지고 뒷부분도 성한 곳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가족 중 다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우리 가족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주님의 손길, 그리고 기적을 경험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명성교회를 통해 받은 은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무엇보다 성전을 중심으로 사는 삶이 믿음으로 변화하여 그 은혜가 주변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구역장과 교회학교 교사로 섬기고 있고, 남편은 안수집사로 농아부와 도서판매부 총무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두 자녀도 청년부에서 훈련을 받으며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귀한 아버지 집으로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감사를 돌리고, 늘 영의 양식을 먹여주시는 당회장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