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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에 은행 지점장이신 우리 교회 집사님 한 분이 아주 긴급하게 팩스를 보내왔습니다. 내용인즉 급하게 가야 될 일이 있어 빨간 불에 좌회전 하다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58세 된 아저씨를 치어 교통사고를 냈답니다. 이 집사님은 기가 막히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목사님 기도해 주세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이 집사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도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하시느냐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그 박집사의 생명록을 찾으십니다. 그 노트에 기록한 긍휼의 책을 보는 겁니다. 지점장으로 있으면서 매 주일 골프나 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먹고 놀면서 흥청망청 했는지 보는 겁니다. 

 

 

그러나 남을 불쌍히 여기고, 회사 부도나려는 고객을 도와주고, 상담해 주고 그런 긍휼을 베푼 일 있으면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겁니다. 예를 들어 그 피해자 가족들이 긍휼 베푸는 사람을 만나면 ‘아이고 이 분이 무슨 악의를 가지고 이렇게 한 것이 아닌데’ 하면서 합의를 잘해 준다든지, 또 담당 검사를 만나도 ‘아유 지점장님, 어떻게 하다 그렇게 했냐’고 이렇게 처지를 불쌍히 여기는 검사를 만난다든지, 긍휼이 있는 사람은 긍휼의 길이 열리는 겁니다.

 

  여러분이 좋은 직위에 올라가셨습니까? 돈을 많이 버셨습니까? 성공했습니까? 이것이 영원한 자리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나 혼자 잘 살라고 주신 기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많은 슬픈 자, 괴로운 자, 불쌍한 자에게 긍휼을 베풀 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있는 이 자리는 오래 있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은행 지점장 자리는 영원한 자리가 아닙니다. 문제가 오면 한 순간에 그만 둘 자리입니다.

 

  저도 봉사할 때 그걸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내게도 어떤 문제가 있으면 이 교회도 내 교회가 아니오, 당회장실도 내 당회장실이 아닙니다. 어떤 것도 내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외국에 집회 갈 때도 당회장실 책상을 깨끗하게 치웁니다. 내일 일을 모르니까, 후임자가 와서 이 자리를 물려받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는 제 자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잠깐 동안 좋은 일 하라고 기회를 주시는 것이지 이 자리가 영원한 자리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영원한 건 무엇인가, 진짜 내 것은 무언가? 이웃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고 도와 준 것은 영원히 내 것입니다. 이것은 사고가 나도, 이 땅을 떠나도 가져가는 겁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하나도 내가 가져가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은 이걸 바꾸어 생각합니다. 이 자리는 전부 내 자리이고, 남에게 좋은 일 한 것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 이렇게 생각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이 세상이 삭막하고 어려운 것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살겠다고 욕심을 내고 있습니까,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장담할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다 우리에게도 사고가 있을 수 있고 응급실에 실려 갈 수도 있고 환난을 당할 때 여러분이 누구를 붙잡으시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간구할 때 하나님은 첫째 찾는 것이 이 얘가 누구를 불쌍히 여겼느냐, 누구의 눈물을 닦아주고, 누구를 도와주었느냐, 누구를 용서해 주었느냐, 누구와 좋은 관계를 맺었느냐 이런 것을 찾는다는 걸 성경을 통해서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어려워도 남이 도와달라고 할 때 여러분이 주머니를 열어서 도와주면 여러분이 긴급하게 자녀 문제로, 질병 문제로, 환난 문제로 하나님을 찾을 때, 구약 성경에 나온 것처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기도가 안 된다는 분이 있고 말 한마디만 해도 하나님의 응답이 바로 오는 삶은 어디에 차이가 있느냐? 여러분이 행하는데 차이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서로 나누어야 합니다. 거기에 화평이 있습니다. 평화가 있습니다. 인간의 삶이 서로 사랑하며 서로 돕는 그 곳에 가정의 평화가 있고 나라의 평화가 있고 교회의 평화가 있습니다.  (김삼환목사 주일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