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나는 가끔 깊은 밤 잠에서 깨어 지친 모습으로 깊이 잠들어
있는 당신을 물끄러미 지켜보며 생각합니다.
"가엾은 사람,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한평생 걷지
못하는 아내와 힘겹게 살아야 할까?" 라구요.
그런 생각을 하며 나도 모르게 서러움이 북받치지만
자고 있는 당신에게 혹 들킬까봐
꾸역꾸역 목구멍이 아프도록 서러움을 삼키곤 합니다.
비를 좋아하는 나는 비가 내리는 날이면
가끔 당신을 따라 나섰지요.
하루종일 빗속을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 때문에
힘든 줄도 모르게 되지요.
그런데 며칠 전 겨울눈이 제법 많이 내리던 날,
거리에서 마침 그곳을 지나던 우리 부부나이 정도의 남녀가
우산 하나를 함께 쓰고 가는 모습을 보았어요.
서로 상대방에게 조금이라도 비를 덜 맞게 하려고
우산을 자꾸 밀어내는 그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당신이 비를 몽땅 맞으며 물건 파는 모습이 나의 눈에
들어왔어요.
그때 내가 느꼈던 아픔과 슬픔은 어떤 글귀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나의 가슴을 아리게 했어요.
그때 나는 다시는 비 내리는 날 당신을 따라 나서지
않겠노라 나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답니다.
그리고 여보,
지난 결혼 10주년 기념일에 당신은 결혼때 패물 한가지도
못해줬다며 당신이 오래도록 잡비를 아껴
모은 돈으로 나에게 조그마한 반지를 사주었지요.
그때 내가 너무도 기뻐했는데
그 반지를 얼마 못가 생활이 너무 힘들어 다시
팔아야 했을 때,
처음으로 당신이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을
보고는 너무도 가슴이 아팠어요.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당신은 그때일을 마음 아파 하는데, 그러지 말아요.
그까짓 반지 없으면 어때요.
이미 그 반지는 내 가슴 속에 영원히
퇴색되지 않게 새겨놓았으니 나는 그것으로도 충분해요.
3년 전 당신은 여덟시간에 걸쳐
신경수술을 받아야 했었지요.
그때 마취에서 깨어나는 당신에게 간호사가
휠체어에 앉아있는 나를 가리키며
누군지 알겠느냐고 물었을 때
당신은 또렷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어요.
"그럼요, 내가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도
사랑할 사람인데요"
라고. 그렇게 말하는 당신에게
나는 바보처럼 고맙다는 말도
못하고 한없이 눈물만 떨구었어요.
그때 간호사가 나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분이세요" 라고. 그래요,
여보. 나는 정말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예요.
건강하지는 못하지만 당신이 늘 나의 곁에 있기에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요.
어린 시절 가난과 장애 때문에 학교에 다니지 못했기에
나는 지금 이 나이에 늘 소원했던 공부를 시작했지요.
적지않은 나이에 초등학교 과정을 공부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야학까지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와 아이들과
어머니 저녁 챙겨주고 집안청소까지 깨끗이 해놓고
또다시 학교가 끝날 시간에 맞춰 나를 데리러 와주는 당신.
난 그런 당신에 대한 고마움의 보답으로 정말 열심히
공부할 겁니다.
어린 시절
여느 아이들이 다 가는 학교가 너무도 가고 싶어
남몰래 수없이 눈물도 흘렸는데
이제서야 그 꿈을 이루었어요.
바로 당신이 나의 꿈을 이루어 주었지요.
여보, 나 정말 열심히 공부해 늘 누군가의 도움만 받는
사람이 아니라 이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될 거예요.
여보,
한평생 휠체어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나의 삶이지만
당신이 있기에 정말 행복합니다.
당신은 내 삶의 바로 그 천사입니다.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고 늘 감사의 두 손을 모으며 살 겁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아내가.
- 임영자 -
사랑은 이상하게도 나보다 먼저 상대방을 챙기게 만들고, 이기심을 배려로, 교만을 겸손으로, 부정을 긍정으로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내 평생 사랑은 당신이야" 라는 고백으로 사랑 가득한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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