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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gif 나는 오랫동안 창고 구석에 아무렇게나 쌓여있던 쇠붙이였어요. 어느 날 뜨거운 불 속에 던져져 정신이 가물가물해지고 양 볼이 빨간 풍선처럼 됐을 때에야 겨우 불속에서 꺼내졌어요. 크고 두툼한 손을 가진 아저씨가 나를 땅땅 두드리기 시작했어요. 드디어 새롭게 태어나 무언가가 된다는 것을 알고 참 기뻤죠. 그동안 창고 속에서 녹이 슬며 참 슬펐거든요.
 아저씨가 오래도록 두드리자 몸이 아프고 머리가 흔들렸지만, 내가 무엇이 될지 궁금한 마음에 망치질과 풀무불의 뜨거움을 꾹 참고 견뎠어요. 드디어 나는 가운데가 옴폭 들어가고 바깥으로 넓게 입을 벌린 둥근 종 모양이 되었어요. 세상의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모습이 좋았어요. 아저씨가 마지막으로 배꼽 안쪽에 둥근 추를 달아주자 내 몸에서 아름다운 소리가 났어요. 그 소리는 맑고 긴 여운을 남겼어요.
   

 나는 다음날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게 되었어요. 얼마 가지 못해 길이 좁아지고 차가 더 이상 갈 수 없게 되자 나는 리어카에 실렸어요. 높은 고개를 몇 개나 넘고 자갈이 많은 시냇물을 간신히 건너서 도착한 곳은 조그만 시골 교회였어요.
 교회 앞쪽으로 벼가 익어가는 논이 펼쳐있고 그 너머엔 산이 이어져 있었어요. 뒤쪽에는 높은 산이 우뚝 서 있고, 교회 옆으로 비스듬히 이어진 길을 따라 얼마쯤 가자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동네가 보였어요. 교회 마당, 짚으로 지붕을 이은 종루에 매달려 다음 날부터 나는 ‘댕~댕~’ 맑은 소리로 산골의 새벽을 깨웠어요. 
  

 며칠 동안 처음 만난 산이며 골짜기, 오솔길, 모양이 제 각각인 나무들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세상은 먼지 덮인 창고 속에서 혼자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서 이렇게 눈부신 세상을 누가 만들었는지 궁금했어요. 나를 대장간 아저씨가 만들어 주었듯이 이 세상도 분명 누군가 만들었을 테니 말이에요. 그 분은 대장간 아저씨와 비교할 수 없이 큰 손을 가진 분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새벽마다 내 몸에 달린 줄을 잡아당겨 내가 고운 소리를 내도록 해주는 소년을 보았어요. 소년은 매일 새벽, 빨간 볼로 뛰어와 빛나는 눈으로 날 올려다보며 줄을 잡아당겼어요. ‘댕~댕~’ 맑은 종소리가 온 동네 구석구석, 산골짝 구석구석 울려 퍼지면 소년은 행복한 듯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었어요. 그리고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 불을 켜고 정성스럽게 예배 준비를 했어요. 비록 초라한 옷차림이었지만 얼굴은 기쁨이 넘쳐나 아름답게 빛났어요.
 종소리에 이끌린 사람들이 한두 명씩 모여 들어 예배가 시작되면, 나는 예배당 밖으로 새어 나오는 찬송가를 따라 부르며 같이 기도를 했어요. 지나가던 바람이 어깨에 앉아 내 찬송소리를 들으며 다리를 흔들었어요. 그러면 내 목소리가 멀리까지 번져나가 잠자던 풀벌레와 꽃과 들판의 벼들을 깨웠어요. 목사님의 말씀이 너무나 궁금했지만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말씀 소리는 문밖으로 새어나오지 않았어요.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깊어갈 즈음 나도 많은 찬송가를 알게 되었어요. 소년이 종을 치면서 큰 소리로 찬송을 부른 덕에 빨리 배울 수 있었지요. 어느 날 힘차게 줄을 잡아당긴 후 나를 올려다보는 소년에게 물었어요.
  

“내가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목사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말해줄 수 있니?”
 

“응, 하나님이 죄인 된 우리를 구하시려고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 주셨대.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셨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신대.”
  

“와~~ 하나님은 정말 사랑이 많으시고 놀라운 분이시구나! 그럼 너도 예수님을 믿는 거니?”
  

“그럼 당연하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이 늘 나와 함께 계시고 은혜 주시는 것을 아니까 이렇게 새벽마다 기쁘게 너를 울리고 예배를 드리는 것 아니겠어?”
   

“그렇구나! 이제부터 나도 하늘까지 울릴 정도로 크게 종소리를 울려야겠구나. 내 종소리를 듣고 더 많은 사람들이 예배당에 올 수 있도록 말이야.”
    

 그날부터 나는 하나님이 계시는 예배당에 살면서 사랑의 소리를 전하는 것이 너무나 기뻐 저절로 어깨가 으쓱해졌어요.
날마다 변함없이 소년과 만나 종소리를 울리며 몇 년이 지났어요. 소년은 이제 어엿한 청년이 되었고, 나도 나이를 더 먹고 믿음이 쌓여 더 깊은 소리를 내게 되었어요. 어느 날 청년이 된 소년이 나에게 말했어요.
   

“새벽종아, 나는 목사님이 될 거야. 그렇게 되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해. 그래서 서울로 떠나야 해. 다른 사람이 너를 울려 줘도 큰 소리를 내며 변함없이 새벽을 깨워야 해 알았지? 언젠가는 다시 널 찾아 올 테니까 너무 슬퍼말고 잘 지내고 있어. 내 친구!”
  

 새벽 친구가 떠나고 자꾸만 슬퍼져서 소리에 힘이 빠지는 나를 보고 바람친구가 한 마디 했어요.
   

“어이, 새벽종! 그렇게 맥없이 있으면 네 새벽친구가 가슴 아파하지 않겠니? 내가 도와줄 테니까 힘을 내. 네 소리를 더 멀리까지 데리고 날아갈 테니 힘차게 소리를 내 봐 알았지? 그러면 서울로 간 네 친구도 마음으로 들을 거야.”

   
 그렇게 몇 년이 세월이 흐른 후, 새벽 친구가 목사님이 되어 돌아왔어요. 난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몰라요. 친구는 밖에 있는 내가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말씀을 전했어요. 들에서 일하느라 늘 잠이 부족해 졸던 아저씨 아주머니들도 목사님의 큰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드는지 말씀을 들으며 ‘아멘! 아멘!’을 외쳤어요.
 그런데 또 이별의 날이 왔어요. 친구가 서울로 목회를 하러 떠나게 된 거예요. 나는 많이 슬펐지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전하러 가는 친구에게 축복을 빌어주었어요. 이제 내 몸은 누가 쳐도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낼 줄 알게 되었어요. ‘작은 일에 충성하라’는 말씀을 붙들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더울 때나 추울 때나 나는 새벽종의 임무를 충실히 해나갔어요.  
    

 그렇게 강산이 몇 번 바뀔 정도의 세월이 흘렀어요. 사람들은 모두 시계를 갖게 되어 굳이 새벽종 소리를 듣지 않아도 시간 맞춰 예배당에 나오게 되었어요. 아무도 나를 쳐주지 않았고, 바람만이 어깨에 앉아 놀다 갈 뿐이었어요. 이제 쓸모없어진 내 모습을 보며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이 다 끝나버려 주님마저 날 잊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낙심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이마에 주름이 생기기 시작한 새벽친구가 찾아왔어요.
    

“언제 봐도 정겹고 보고 싶은 새벽종! 난 언제나 널 생각하며 새벽을 깨우고 기도에 힘썼단다. 덕분에 하나님께서는 내게 아주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지. 널 데리고 서울로 가고 싶어. 서울에서 내가 섬기는 교회 강단 위에 널 세우고 싶어. 성전에 들어오는 많은 사람들이 널 보고 언제나 맑은 영혼을 가지고 새벽을 깨우며 기도에 힘쓰게 하고 싶어.”

   

 멋진 중년의 목사님이 되신 새벽친구는 강단 한쪽에 내 자리를 만들어 주었어요.
 날마다 기도와 찬송과 말씀이 스며들어 내 몸은 점점 더 아름다운 소리를 내게 되었어요. 절기 때마다 두루마기를 정갈하게 차려입은 목사님이 내 몸에 달린 줄을 잡아당길 때면 나는 가장 은혜로운 소리를 내기 위해 온 힘을 기울입니다. 아직 이 땅에서 내가 할 일이 있다는 게,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요!
 이제 아름다운 새 성전이 지어졌어요. 내 친구 목사님은 누구보다도 떨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입당을 준비하였어요. 새 성전을 짓기 시작하면서부터 입당할 때까지 목사님의 정성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지요. 물론 모든 성도들의 기도가 뒷받침이 되었고요.
 창고 구석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보잘것없던 쇠붙이를 사용하셔서 주님을 찬양하는 아름다운 새벽종으로 만들어 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나도 이제 나이가 많지만 사람들이 날 기억하는 이상 녹슬지 않고, 영원히 새벽을 깨우며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성전에서 예배드리며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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