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08 토새깨 담임 목사님 '마지막 왕의 영성' 말씀 요약, 열왕기하 17:1~6, 작성자: 이용석 집사>
오늘 호세아는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입니다. 우리는 보통 아주 나쁜 사람들이 나쁜 일을 해서 그들이 멸망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인간의 역사를 보면 악한 왕들, 악한 지도자들, 아주 나쁜 사람들이 나라를 망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냥 평범했던 적당히 했던 왕들이나 그러한 지도자들도 여전히 나라를 망쳐버리는 케이스들이 있습니다.
호세야 왕이 바로 그런 사람으로 그는 대단히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어쩌면 조금 더 평범에 가까운 그런 왕인데, 이 호세야 왕 때 북이스라엘은 완전히 멸망하게 됩니다. 여기에 국가적 영적 문제도 분명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죄를 지었고 아세라와 같은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쫓은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이방인들의 규례를 쫓았습니다. 호세야 왕 또한 북이스라엘의 멸망의 책임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한 평범했던 왕이 어떻게 한 나라의 등불을 꺼뜨리는지 그 영적인 문제에 대해서 한번 잠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바로 출애굽의 문제입니다. 정말 미묘한 것은 북이스라엘이 지금 이스라엘 전체가 출애굽한 지 700년 정도가 흘렀으나, 여전히 그들은 실제로는 출애굽을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문제가 생기면 자꾸 애굽을 의지하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애굽에서 나와야 합니다. 성도들은 애굽을 의지하거나 자꾸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옛 세상의 가치관과 힘으로 살려고 하지 말고, 절대적으로 야훼의 하나님을 의지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를 도와줄 사람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오늘 호세야 왕이 했어야 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나라를 강하게 만들었어야 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꾸 애굽에만 얼씬거리게 되어서, 결국 그 나라는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만이 참된 생수 되시고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분명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호세아 왕은 적당히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입니다. 우리가 적당히 하나님을 믿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릅니다. 우리에게 적당한 믿음의 훌륭함일 때,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며 하나님 안에서 강해져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앗수르나 애굽을 의지하지 않고, 우리의 삶 속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애굽의 진짜 문제는 자꾸 생각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애굽이 자꾸 생각이 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애굽을 완전히 끊어내야 합니다. 애굽을 평소에는 의지하지 않았으나, 문제가 생기면 애굽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꾸 하나님이 생각이 나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도움이시며, 하나님만이 나의 구원이시며, 하나님의 능력만이 우리를 살리시는 것을 꼭 기억하고 절대로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 은혜가 있길 축복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비교적 악하지 않음에 위험함을 알아야 됩니다.
호세아는 비교적 괜찮은 왕이었습니다. 아합처럼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이스라엘의 여러 왕들처럼 정말 하나님을 모욕하고 인신 제사를 드리는 이러한 패악한 왕들처럼 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정도면 괜찮지 않는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비교적 악하지 않은 이 호세아 왕의 때에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망하게 됩니다.
우리는 내가 많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위안으로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많이 악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약간의 선함이 우리의 안전함을 절대로 보장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완전히 악하지 않음이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비교적 선함이 절대로 어떠한 것도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우리의 무난함은 무난한 삶을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무난한 사람인 것이 중요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가 비교적 악할지라도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은 삶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 의로움을 내려놓고 우리의 부족함을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비교적 착한 사람들의 문제는 하나님 앞에 겸손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비교적 괜찮은 사람들이 나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차라리 죄인이 되거나 완전히 망하든지 해야 하나님을 찾아서 나오게 됩니다. 적당히 살고 괜찮은 사람들은 다 자기 의로움과 생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적당히 나쁜 사람들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들이 많이 생기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되게 악한 사람들이 악한 일을 하는 줄 알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 호세아 같은 별로 나쁘지 않은 사람들이 악한 일을 얼마나 쉽게 할 수 있는지 우리가 성경의 이야기를 통해서 깨닫게 됩니다. 오늘 내가 비교적 착하다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철저하게 하나님을 잘 믿길 축복합니다.
우리는 내가 나쁜 짓을 많이 안 했다는 것에 나의 의에 방점을 두면 안 됩니다. 오직 우리 의의 방점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약간의 착함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무난한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철저하게 하나님 경외하는 삶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아이들도 철저하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예배 중심으로 설 수 있도록 우리가 믿음의 교육을 잘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호세아의 때에 작은 것의 위중함을 보게 됩니다. 정치적으로 봤을 때, 이것은 영적인 문제는 아닙니다. 물론 그 안에 다 영적인 문제들이 연관되어 있겠지만, 북이스라엘의 멸망의 시작은 조공의 문제 때문입니다.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이 올라왔습니다. 이제 앗수르는 신흥 강국으로 떠오르는 해입니다. 호세아가 그렇기 때문에 두려운 살만에셀에게 조공을 바쳤습니다.
그런데, 호세아는 왜 그런지 출애굽을 하지 못했습니다. 한마디로, 애굽이라면 앗수르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고 그들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난 것입니다. 그래서, 앗수르에게 바치는 조공을 그만두고 애굽을 찾아갔습니다.
그러자, 조공도 안 줄 뿐만 아니라 애굽과 다시 손을 잡는 것을 보고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올라와서 호세아를 옥에 감금합니다. 바로 호세아 왕을 잡아서 옥에다 집어넣고 사마리아를 3년 동안 에워쌉니다. 그 동안 이 안에 살아가는 백성들은 얼마나 비참해졌는지 모릅니다. 그러는 가운데, 이스라엘은 BC 722년에 앗수르에게 완전히 망해버리게 되었습니다.
성도는 별거 아닌 것도 영적으로 중요하게 여길 수 있는 영적인 감각이 있어야 합니다. 어마어마한 일들이 별거 아닌 일로 시작할 때가 참 많습니다. 성경에도 누룩을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항상 작은 것들에서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민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삶에 있는 작은 것들이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깨어서 기도하고 작은 일들도 하나님을 반드시 의지해야 됩니다. 작은 일이라도 하나님을 분명히 기억하고 기도하며 영적으로 깨어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힘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는 작은 것에도 하나님 의지하는 것이 우리의 힘입니다. 우리가 큰 일만 의지하거나 중요한 일이 생겨서 누구나 기도할 때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 아니라, 아무도 기도하지 않을 때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힘입니다.
우리에게 별거 아닌 일에 호들갑을 떠는 것이 우리의 힘입니다. 우리에게 별거 아닌 일이지만, 하나님이 이것을 중요하게 보신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힘입니다. 우리가 주일날 예배드리는 것 하나가 우리의 삶을 잡아주고 힘을 주고 능력을 준다는 것을 아는 것이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작은 것을 중요하고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그 은혜를 반드시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스라엘은 나중에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의 옛 수도였습니다. 예루살렘은 남유다의 수도였습니다. 남유다는 나중에 유다와 베냐민 지파밖에 없는 작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다는 오히려 번성하고 많은 지파가 있는 북이스라엘은 계속해서 악한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이것이 사마리아의 역사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왕인 여로보암이 사마리아를 세우면서부터 그때 거기에서 예루살렘 못 내려가게 되어 자기들의 예배처를 마련하고 따로 예배드렸습니다. 결국은, 그것이 어긋나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사마리아를 통해서 다 망하는 길로 가게 됩니다.
오늘 말씀인 열왕기하 17장에는 사마리아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우상이 만연했던 이 땅에 혼합 종교가 가득하게 됩니다. 앗수르도 그랬지만 항상 큰 나라들이 갖고 있는 정책 중에 하나가 자신들이 정복한 나라 사람들의 종교를 어느 정도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이 북이스라엘을 점령했지만, 하나님을 섬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제사장을 세워서 제사를 드리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분명하게 믿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신앙이 섞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적당히 믿으면, 우리의 종교가 섞여버립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방인들과 결혼하고 자기의 나름대로 예배를 드리면서 이 안에 혼합 종교가 가득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상종하지도 않는 완전히 빼앗긴 땅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마리아의 문제는 이 빼앗긴 땅을 다시는 되찾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적당한 믿음은 위험한 것입니다. 우리가 적당한 믿음을 갖다 보면, 결국은 빼앗기게 되는 것이고 빼앗긴 것을 되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삶에 어긋나버린 것들 가운데 회복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가 빼앗기면 되찾기 쉽지 않습니다. 사마리아가 영원토록 하나님을 떠나서 지금도 사마리아는 유대인들이 못 들어갑니다.
우리가 빼앗기지 않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적당함으로 살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더 온전한 믿음으로 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될 때, 우리가 비로소 이 땅 가운데서 빼앗기지 않는 은혜를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도 우리 안에서 더욱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이 세워지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