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22 토새깨 담임 목사님 말씀 요약, 열왕기하 16:10~16, 가장 악한 왕의 영성, 작성자: 이용석 집사>
   오늘 말씀에 제사의 이름은 많이 나오지만, 아하스 왕은 하나님을 경외한 왕이 절대로 아닙니다. 오히려,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적으로 우상을 숭배하고 아들을 몰렉에게 제사로 바치는 인신 제사를 드린 왕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가장 불순종했던 왕입니다. 오늘 우리가 가장 악한 왕의 모습이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보면서, 그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소망을 발견하는 은혜를 누리길 원합니다.
   남유다 왕인 아하스왕 재위 때, 북이스라엘은 주전 722년에 아시리아에 멸망하는데, 이상하게 남유다는 살아남았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죄를 짓고 악하면 다 멸망하는 줄 아는데, 하나님께서 유보시켜주시고 은혜로 회복시켜주시는 역사하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하스가 가장 악한 왕이었지만, 하나님이 살려주셨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더 나아가서, 그의 후손을 통해서 다시 이 나라를 회복시켜 주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을 마지막에 보게 됩니다.
   북이스라엘은 아예 하나님을 떠나서 많은 왕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잘못했지만, 남유다 왕들은 다윗의 가문의 후손으로 그들은 하나님 앞에 중간 정도는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아하스는 하나님을 전혀 경외하지 않았습니다. 북이스라엘의 가장 나쁜 왕 중에 하나로 오므리 가문의 아합 왕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악한 왕일 때, 항상 중요한 선지자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아합 왕 때는 엘리야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엘리야가 말할 때, 아합은 좀 들었습니다.
   아하스 왕 때는 이사야가 있었습니다. 이사야 같이 훌륭한 선지자라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들을 것 같은데 아하스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자기의 뜻대로 행하다가 결국은 죽은 왕입니다. 아하스는 큰 나라인 앗수르의 왕을 이스라엘의 바로 위에 있는 다메섹에서 만나게 됩니다. 그가 거기에 있는 우상의 제단을 보면서 그것이 마음에 들었는데, 이것부터가 문제입니다.
   원래 옛날부터 특별히 가난하고 힘 없는 나라의 리더들은 해외를 나가서 새로운 문명을 보고 되면, 거기에 발전한 모습을 보고 도전을 받아서 그것을 가져다가 본국에 가져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훌륭한 리더들과 악한 리더들의 차이가 있습니다. 가난한 나라의 훌륭한 리더들은 해외에 나가서 좋은 것을 보면 나라를 생각합니다. 백성들의 먹고 살 일들을 내가 만들어야겠다라고 하면서 좋은 리더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독재자들은 자기의 배만 불리는 것입니다.
   아하스는 우상의 제단을 보고 와서 그 제단을 그립니다. 그것을 제사장 우리야에게 그대로 만들라고 주게 됩니다. 우리야는 그 도면 그대로 제단을 만들고 성전을 고치라는 대로 다 고쳐서 아하스의 마음대로 제사를 드릴수 있도록 다 도와줍니다. 이것은 요즘 말로 말하면 정경유착입니다. 종교가 정치에 빌붙게 되는 정말 최악의 상황까지 가게 되는 것입니다.
   아하스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아도 이렇게 경외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우상을 섬기는 제단을 보고 와서 그것을 세우게 되는데, 성전이 세워진 이후에 유다 왕으로서 처음으로 산당에서 예배를 드린 왕입니다. 또한, 성전을 거의 파괴하다시피 자기의 마음대로 고친 왕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믿음의 도전을 받고, 예수님을 잘 믿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임을 꼭 기억하길 축복합니다. 오늘 아하스라는 가장 악한 왕의 영성 몇 가지를 좀 나눠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는, 아하스는 하나님의 영역을 자기의 마음대로 하는 악한 영성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예배 안에서 자유함을 느끼지만, 예배를 자유롭게 드려서는 안 됩니다. 예배는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디자인하셔서 주신 것입니다. 예배받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배를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식대로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아하스는 자기의 마음대로 성전을 다 바꿉니다. 성전의 구조와 도구를 자기가 좋아하고 편한 대로 바꾸는 모습들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성전의 구조를 마음대로 바꾸는 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왕이 교만하여도 이렇게까지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아하스는 교만함을 가진 왕으로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고, 성전에 있는 기구를 부술정도로 악했습니다.
   두 번째로, 아하스 왕은 하나님께서 가장 경멸하시는 우상을 섬겼습니다. 몰렉은 인신 제사를 받는 우상입니다. 우상이 있어도 아들을 사람을 바치는 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하스는 그냥 바알과 아세라에게 절한 것이 아니라, 몰렉에게 자기의 아들들을 바칩니다. 아하스와 그의 손자 므낫세 이 두 왕만이 바로 몰렉에게 제사를 드리는 왕이 됩니다.
   당시에 이스라엘이 아람이라고 하는 국가와 아주 어려운 관계 속에 있었습니다. 침입해 오는 아람 왕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아하스가 쓰는 방법이 두 가지입니다. 몰렉에게 제사를 드린 것과 앗수르 왕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려움이 다가올 때,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가장 먼저 생각이 나야 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가 기도이며 그 기도에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부터 생각하는 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부터 생각나는 교인이 될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세 번째 마지막으로, 아하스는 이사야와 같은 좋은 선지자를 만났지만, 그의 권고를 무시하였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로 귀하게 여길 수 있는 귀가 있다면 살아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그냥 버리지 않으십니다. 끝까지 우리를 따라오시고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성경 안에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여러 가지 통로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가 듣지만 나에게 주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주권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원한다고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품적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귀를 기울이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가 들을 수 없을 때,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하여서 말씀해 주시고 주의 종들을 통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그 음성을 귀하게 여길 수 있느냐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아무런 가치도 느끼지 못하고 그냥 시간만 때우는 것이 되면, 그것은 좋은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만 잘 들어도 잘 살 수 있습니다.
   남유다가 잘 사는 방법은 앗수르와 애굽을 붙잡는 것을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은 북이스라엘처럼 남유다도 바벨론에 나중에 멸망하게 됩니다. 우리가 평생에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듣는 그 마음 변치 않길 축복합니다.
   아하스가 몰렉에게 자식을 바쳤는데 그 중에 살아남은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가 나중에 왕이 되어 성전을 정결하게 하고 모든 우상들과 산당을 없애는 일에 힘쓰게 됩니다. 물론, 완전히 산당을 다 없애진 못했지만, 아버지는 악한 왕이었는데 그의 아들은 선한 왕이 됩니다.
   아하스의 왕의 그 아들이 바로 히스기야입니다. 이렇게 가장 최악의 왕 가운데 하나님께서 이 가문의 신앙을 꺼뜨리지 아니하셨습니다. 히스기야는 몰렉에게 제사 드리는 그 아버지를 보면서 애타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전의 기물이 깨지는 것을 보면서 가슴 아파하고 하나님 앞에 정말 회개하며 애통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악한 곳에서도 하나님이 선을 이루실 수 있다는 소망을 여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악한 나라에서도 선한 백성이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의지하고 나아가면 어떤 곳에서도 하나님은 놀라운 선한 일을 행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우리의 연약한 삶 속에서도 끊임없이 주님의 귀한 종들을 일으켜 세워주시고, 부족한 우리 가운데서도 주님의 선한 일을 이루실 것을 분명하게 믿습니다.
   아하스는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것을 찾아볼 수 없는 왕입니다. 그래도, 무엇인가 하나 있을텐데 그런 것조차 없는 왕입니다. 우리는 이 왕의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복을 받은 왕이 이렇게 철저하게 하나님을 외면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 정말 놀라운 역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불쌍히 여겨주셨스니다. 그 가운데 주의 종을 다시 새롭게 일으켜서 히스기야를 통해서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가 부족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부족함 속에서도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나라와 가정과 기업의 은혜를 꼭 누리길 축복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훌륭하게 믿음으로 커서 이 나라를 다시 굳게 세우고 우리 한국 교회의 부흥을 일으키는 놀라운 은혜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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