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30 새벽2부 예배 담임 목사님 '슬기로운 그리스도인이 되는 법' 말씀 요약, 마태복음 25:1~13, 작성자: 이용석 집사>
   오늘 예수님께서 열 처녀 비유를 하신 이유를 분명히 갖고 계시겠지만, 진정한 주제는 기다림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기다림의 신앙입니다. 얼마나 잘 기다릴 수 있느냐와 그 기다림을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과 깊은 관련을 갖고 있습니다.
   먼저, 지혜 있는 기다림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기다림은 단순히 인내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얼마나 더 참을 수 있느냐 더 견딜 수 있느냐 이것만이 아닌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인내가 지혜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십니다. 
   본문에 나오는 미련한 처녀들이 도망가거나 기다리지 못해서 포기한 처녀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지혜가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다림은 지혜와 깊은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언제 오실지 모르는 신랑을 우리가 어떻게 지혜를 갖고 기다려야 하느냐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그냥 종말이 오는 그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대충 기다리면 안 됩니다. 그 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잘 쓰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기다림은 그냥 어쨌든 잘 버티면 예수님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미련하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언젠가 오시겠지가 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게으르게 대충 살아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삶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예수님을 기다리고 믿음이 좋다고 하면서 나는 믿음이 좋으니까 일하지 않고 예수님만 기다리겠다고 하는 것은 지혜가 아니라 어리석음입니다. 교회는 핑계가 아니라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핑계로 전락하는 순간, 신앙은 도피적으로 될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은 우리가 오늘을 더 힘있게 살아가는 능력입니다. 우리는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신앙의 정체성입니다. 우리는 지혜롭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는, 기름을 반드시 준비하는 기다림이 되어야 합니다.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였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기름이 뚝 떨어지고 불이 꺼졌습니다. 반면에,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습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이 이제 다 들어가고 미련한 처녀들은 기름 사러 갔다가 문이 닫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는다고 하시면서 오늘 본문 말씀과 똑같은 말씀을 이미 하셨습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살아가던 그런 반석과도 같은 기름을 들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미련한 사람들은 말은 주여주여 하지만 예수님의 뜻대로 살아가지 않았던 미련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주여만 외치지 마시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기름이 있길 축복합니다. 우리에게 그 기름이 있어야 천국에 들어가는 슬기로운 사람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지혜가 없으면 아무리 말해줘도 그것을 행하지 않습니다. 
   지혜가 있는 사람들은 몇 마디만 해줘도 그것을 알아듣고 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서 오늘도 주님을 붙잡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주여만 외치고 예수님 말씀은 전혀 관심이 없고 내 마음과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도 여전히 많습니다.
   우리가 주여만 외친다고 해서 슬기로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바로 등은 준비했지만, 기름은 없는 여인들과 똑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주여만 외치지 마시고 기도하길 축복합니다. 우리의 삶이 기름이 준비된 슬기로운 삶이 되어서 우리가 지혜 있는 자 같이 반석 위에 서서 창수가 와도 든든히 서 있는 반석 위에 지어진 집 되길 축복합니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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