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22 새벽2부 예배 담임 목사님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말씀 요약, 사도행전 13:48~52, 작성자: 이용석 집사>
예수님은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그 충만하심이 성령에게 전달이 됩니다. 예수님이 가셨던 곳에 기적과 기쁨과 생명이 충만했으며 감사가 넘쳤고 놀라움이 넘쳤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존재의 놀라운 비밀이며 본질입니다. 그 충만함을 성령께서 지금도 우리 가운데 감당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님을 만나서 성령님이 함께하실 때, 성령의 충만만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가지셨던 충만함을 우리가 다시 누리게 됩니다. 성령님의 임재하심이 주시는 충만함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성령의 충만함으로 예수님의 충만함을 경험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 유대인들이 바울과 바나바와 사도들을 시기하기 시작합니다. 여러 가지로 시비를 걸다가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면서 유대인들은 이제 정치적인 선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순수하게 말씀만 전하고 있는 이들을 쫓아냅니다. 그런데, 쫓김을 당하는 이들에게는 너무나 맞지 않는 태도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쫓겨나는 가운데도 기뻐했고 성령이 충만했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했을까요?
첫 번째로, 발의 티끌을 떨어내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기뻐하며 성령 충만할 수 있었습니다. 발에 티끌을 떨어내는 것은 유대인들의 관습일 뿐만이 아니라 영적인 자세입니다.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며 쫓아내는 곳에서 어떠한 미련과 후회와 아픔도 남겨두지 않고 떠나겠다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주시는 마음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오시면 우리에게 실망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억울한 말을 듣고 미움을 받으며 아픈 말들이 우리에게 쏟아질 때, 우리의 본성은 실망하고 분노하며 아파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때, 그 성령의 충만함으로 실망하지 말고 발의 티끌을 떨어버리는 믿음을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안 되는 것은 모두에게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한 믿음의 사람들의 공통점은 안 되는 것 앞에서 주저앉지 않았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실망감을 영원히 내 안에 담고 사는 것은 굉장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내 발 위에 있는 그 무거운 짐을 떨어내야 합니다. 이런 실망감들이 우리의 발 위에 쌓이기 시작하면 우리의 발걸음은 결국 느려집니다. 우리의 실망감이 많을수록 우리는 점점 느려지고 무거워집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하여서 세상에서 안 된 일로 생긴 모든 실망감들을 다 확실히 떨어내기를 축복합니다. 그것이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두 번째로, 발의 티끌을 떨어버리는 사람들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놀라운 성령의 능력은 어떤 일이 있어도 복음은 전진한다라는 것입니다. 어떠한 핍박과 아픔이 있어도 복음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중요한 사건 중에 하나가 교회가 큰 핍박을 받는 사건입니다. 교회가 핍박을 받고 사도들이 이렇게 흩어졌으니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이 바로 선교의 시작이었습니다. 교회와 사도들이 흩어지면서 교회는 오히려 앞으로 전진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복음이 세상 바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이 돌에 맞아서 죽을 뻔했을 때, 바울은 일어나 다음 날 다시 전진해 나아갑니다. 바울은 풍랑을 맞아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전진해 갑니다. 이것이 다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우리가 지쳐고 실망해서 앞으로 나아갈 힘이 없을 때와 사람들이 몰라주고 배반하고 뒤에서 돌을 던지고 내 삶에 어려움을 줄 때도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면 우리는 그 충만함으로 인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얻게 될 줄로 믿습니다.
세 번째로, 성령 충만한 사람들은 그렇기 때문에 기쁨으로 이 일을 감당하게 됩니다. 바울이 오늘 이 사건을 겪은 다음에 얻은 가장 큰 교훈은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핍박과 아픔과 실망감 속에서 기뻐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셨기 때문에 그도 역시 항상 기뻐하였습니다. 우리의 감정을 세상 사람들은 잘 이해를 못합니다. 우리가 울어도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거나 기뻐서 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쁜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슬프고 괴로운 일도 많고 쫓겨나서 갈 곳이 없고 답답하며 실망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다시 기뻐해야 하는 주의 종들이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충만함으로 인해서 성령의 충만함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요한복음이 보여주는 굉장히 귀한 메시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받으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충만함이 그들에게 임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도 성령을 받고 사모하길 바랍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오셔서 이렇게 비시디아 안디옥의 슬픈 일들과 괴로운 일들 속에서도, 발에 티끌을 떨어내는 담대한 믿음을 주시고 갈 바를 알지 못하지만, 이고니온을 향해서 달려갈 수 있는 힘을 주시며, 슬픈 일들 가운데도 기뻐할 수 있는 믿음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감사의 조건이 넘치는 그런 곳에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할 때 우리의 삶이 충만해집니다. 티끌을 떨어버려야 감사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야 감사하게 됩니다. 주저앉아서 땅을 치며 울며 괴로워하면 감사할 수 없습니다. 일어서서 앞으로 나아가고 기뻐해야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슬픈 일들이 많아도 다시 기뻐하기 위해서 주님을 바라보면, 감사하는 은혜를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허락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