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9 토새깨 담임 목사님 '분별의 영성' 말씀 요약, 열왕기상 12:6~11, 작성자: 이용석 집사>
   우리에게 좋은 환경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좋은 환경이라고 해서 위대한 인물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의 환경보다 믿음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환경이 중요한 것은 분명하고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환경보다 더 힘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환경을 탓하고 환경 때문이라고 핑계대는 것은 하나님 앞에 맞지 않습니다. 다윗은 환경의 한계를 넘어선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환경이 좋았지만, 이스라엘을 분열시킨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택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이것이 더 좋다고 얘기를 해줘도 그것을 듣는 것이 사람이 아닙니다. 좋은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의 원하는 대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애초에 내가 원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은 노력으로 되는 것은 아니고 항상 깨어 있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내 안에서 원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잘 모르면서 묻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위험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묻는다고 해서 또 듣는 것도 아닙니다. 요식 행위로 많이 들으면서 다 그냥 본인이 원하는 대로 합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한계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묻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무리 응답을 해주셔도 결국은 내가 원하는 대로 가는 것이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듣는 귀를 가지려면 묻는 것으로 멈춰서는 안 되고 열린 귀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분별의 영성을 가지기 위해서 꼭 가져야 하는 것이 바로 공감의 영성입니다. 솔로몬의 모사들은 공감의 훈련이 되어 있었던 지혜로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르호보암과 함께 자라난 이 소년들은 공감하지 못하는 아주 모진 말로 르호보암에게 조언합니다. 우리가 공감 없이 지혜를 가질 수 없습니다. 공감이 없는 지혜는 텅 빈 지식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에게는 끝까지 변치 않는 공감의 영성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자리에 서든 공감의 영성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마음인지 모릅니다. 공감 없이 그냥 나의 능력과 힘으로 하는 것이 바로 르호보암이 시도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공감의 자세 중에 하나가 남의 어려움을 느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이 일하는 것이 많아 보여야 공감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좀 낮은 마음을 가지면 남의 일이 커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이 거칠어지면 남의 일들이 더 작아 보입니다. 르호보암은 백성들이 하는 일들이 커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공감하지 못했고 남의 일이 중요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삶이 귀해 보이지 않았고 내 생각과 주장만 중요하고 귀해 보였기 때문에 바로 문제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해야 세상적인 거친 마음들이 죽고 낮고 부드러운 마음 되는 줄로 믿습니다.
   르호보암은 한마디로 성령 충만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이스라엘의 분열입니다. 성령 충만이 하는 일은 분열된 곳에 일치를 허락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맡든지 성령 충만해서 열정이 있고 뜨겁지만 부드럽게 볼 수 있는 마음을 가지길 축복합니다. 그런 곳에서 더 단단해지는 하나됨이 있습니다. 르호보암에게는 능력의 부족함이라기보다는 분별의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르호보암은 그 많은 훈련을 받고도 분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잘못된 조언을 따릅니다. 그는 왕이 가져야 하는 마음에 대한 분별력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참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기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멍에를 가볍게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무겁게 하는 왕이었습니다. 우리의 참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우리 대신 징계를 받아 채찍에 맞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대신 맞으신 분이시지만, 르호보암은 왕이 되어서 사람을 때리며 징계하는 왕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대신 짐을 져주시는 분이신데, 르호보암은 더 짐을 주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대신 짐을 지시고 징계를 받으시며 우리의 짐을 가볍게 해주시는 왕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섬기는 왕은 좋은 분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 사랑의 다스림을 꼭 배우길 축복합니다. 르호보암처럼 더 무거운 멍에와 잔인한 채찍으로 징계할 때, 분열이 일어나고 아픔이 일어나며 오히려 권위가 더 훼손되는 일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처럼 사랑으로 다스리고 섬기며 내가 희생하고 본이 본이 되어주는 리더십을 보여줄 때, 오히려 그곳에서 손해 보는 것 같지만, 더 아름다운 일들이 많이 생기는 줄로 믿습니다.
   결과적으로, 르호보암은 하나님의 예언을 성취하는 인물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든지 바뀌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입니다. 예언은 우리의 오늘을 바꿔주는 경고입니다. 예언은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다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오늘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오늘이 바뀌면 우리의 미래도 바뀌게 됩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예언이라고 하는 것을 갖고 볼모를 삼아서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을 일으키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일을 작정하셨어도, 우리가 스스로 겸비하여 하나님 앞에서 낮아지고 바른 모습을 되찾으면, 언제든지 예언하신 것을 다시 취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만약에, 르호보암이 하나님 앞에 깨어서 이렇게 전갈 채찍을 휘두르지 않았고 낮은 마음으로 공감하는 마음으로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 앞에 바로 행했다면,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나라를 가르지 않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깨어 있을 때, 하나됨이 깨어지지 않을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낮은 마음으로 섬길 때, 우리의 가정이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공감하길 바랍니다. 
   르호보암이 공감하지 못한 그 하나만으로 나라가 이렇게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공감하고 그것이 영성이라는 것과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주신 은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알아주시며 죄 지은 사람마저도 불쌍히 여겨주시고 품어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성령 충만의 은혜가 있길 축복합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하면 뜨겁고 부드러우며 열정이 넘칩니다. 연약한 사람을 돌볼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 충만의 능력을 갖고 세상에 나가서 다 승리하고 하나됨을 이루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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