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0 새벽2부 예배 담임 목사님 '물을 건너가라' 말씀 요약, 여호수아 3:11~17, 작성자: 이용석 집사>
   오늘 말씀에 이제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이 40년간 광야에서 헤매다가 때가 되어서 요단 동편에서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요단강을 건너는 장면이 홍해를 건너는 것과 굉장히 흡사합니다. 모든 구조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입니다. 
   너희가 새 땅에 들어가려면 어떠한 새로운 세상을 만나든지 그것이 애굽의 세상이든지 가나안을 들어가는 세상이든지 이 물을 건너야 하는 의미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던져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약궤가 먼저 요단강을 들어가게 되고 궤를 맨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강에 잠길 때, 그때서야 이제 모든 물들이 멈춰 서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물이 적기 때문에 우리를 건너가게 하실 수 있는 분이 아니고 물이 많기 때문에 우리를 못 건너게 하시는 분은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가장 많은 요단강이 넘쳐 흐를 때,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물을 건너가기를 원하십니다. 출애굽 때는 홍해를 건너가게 하셨고 가나안에 들어갈 때도 요단강을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여기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의도가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요단강을 건너가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오늘 강을 건너가길 축복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강을 건너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요단강을 건너는 것은 내 자아가 죽는 것입니다. 새 사람이 된다는 것은 새 옷만 입는 것을 말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내 자아가 죽어야 새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요단강을 건너야 정말 가나안에 거주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조차도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요단강의 물에 이 물을 건너가야 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내가 십자가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혀야 합니다. 내 자아가 죽고 그것이 바로 정말로 요단강을 건너는 일이며 우리가 가나안에 들어가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로운 세계를 꿈꾸고 있다면 내가 먼저 꼭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길 축복합니다.
   내가 죽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어떠한 새로운 땅도 내가 죽지 않고서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내가 살아있으면 새로운 세상을 절대로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내가 죽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내가 살아있으면 그 나라를 경험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오는 것은 내가 죽어야 나올 수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교회에 와서 사람들 만나고 예배를 드리면서 내 자아와 가치관과 판단들이 너무 강하면 절대로 이 안으로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요단강을 건너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새 사람이 되기 위해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물을 건너가는 일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정말로 받기를 원하셨던 것은 물의 세례가 아니라 성령의 세례입니다. 홍해가 요단강이 되는 것이고 요단강이 세례가 되는 것이며 물의 세례가 성령의 세례가 되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새 사람이 되려면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나안에 들어가려면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내 생각과 내 판단과 내 능력으로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성령의 임재를 통해서 가나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가나안은 혈통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고백하고 주님의 영이 우리 안에 임재하며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임재할 때, 우리는 비로소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에 들어가는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시대인 새로운 가나안 땅은 성령의 임재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성령의 임재와 사도행전의 놀라운 사건을 통해서 제자들이 요단강을 건너가게 되고 교회의 시대가 활짝 열리게 됩니다. 새로운 생명과 시대와 땅과 기회들 이 모든 것들을 위해서 우리는 내가 죽어야 하고 성령 충만해져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들어갈 수 없는 세계를 들어가는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강으로 들어갈 때, 물을 멈추게 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기적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 거친 물살의 큰 물이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멈추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가고 기도로 주님을 붙잡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도 물을 멈추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요단강을 건널 때만계셨던 하나님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새로운 세상에 들어가기 위해서 언약궤와 함께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는 것이 언약궤입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존재의 에센스입니다. 언약궤가 들어가는 곳에 하나님께서 능력을 베푸시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그 언약궤의 에센스를 붙잡아야 됩니다. 가나안을 꿈꾸고 새 땅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내 힘과 능력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언약궤에 하나님과 함께 들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놀라우신 하나님의 생명의 능력을 보여줍니다. 싹이 날 만한 곳에 나는 것이 아니라, 싹이 날 수 없는 곳에 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방식을 꼭 이해하셔야 됩니다. 하나님은 할 만하고 될 만한 것에서만 그렇게 역사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되지 않을 사람들을 되지 않을 곳에 전혀 안 될 만한 상황에 거기서 싹이 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 믿으시길 축복합니다. 
   그 믿음이 우리로 요단강을 건너가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앞서 들어가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생각이 우리보다 크심을 인정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생각보다 귀하고 하나님의 뜻이 나의 뜻보다 귀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신앙이 될 때, 우리가 요단강을 건너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만나는 매일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만나의 신앙은 우리 하나님께서 나에게 일주일에 한 번 필요한 분이 아니라, 매일 필요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하나님이 아니라, 매일 만나야 하는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하나님 없이는 하루를 이겨낼 수 없다라는 신앙은 무기력한 신앙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큰 신앙입니다.
   오늘 우리는 만나를 통해서 요단강을 건너가는 신앙을 다시 회복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언약궤를 다시 붙잡고 우리의 삶으로 나아가서 물을 건너가길 축복합니다. 담대하게 믿음으로 그곳에 발을 내딛을 때, 하나님께서 그 거친 물살을 멈추게 하고 우리들을 건너가게 하셔서 우리 새 땅에 새로운 세상에 새로운 날과 은혜와 능력을 맛보는 역사가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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